19일 오전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천신일 세종나모회장이 20일 새벽 조사를 마친 뒤 직원들에 둘러 쌓여 서울 서초동 대검찰창을 나오고 있다. 천회장의 회사에서는 직원 수십명을 동원해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면서 천회장을 차에 태웠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연차 로비 수사 의문점
이종찬, 박연차 내사에 관여했을 가능성
한상률 ‘실세 거절’ 청와대 승인 받은듯
이종찬, 박연차 내사에 관여했을 가능성
한상률 ‘실세 거절’ 청와대 승인 받은듯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로비였지만,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검찰은 로비의 출발점으로 대책회의를 지목하고 있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통보를 받은 2008년 7월, 박 전 회장과 천 회장, 박 전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 서울의 한 호텔에 모였다. 이 모임은 이후 태광실업 임직원들과 전직 국세청 직원들까지 참여한 상시 대책회의 형식으로 운영됐다.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회의에 나오지 않았지만, 천 회장이나 박 전 회장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전 수석이 검찰에서 따로 진행되고 있던 박 전 회장에 대한 내사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새 정부 첫 민정수석은 전 정부 비리에 대한 내사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이 큰 기대를 걸었던 천 회장이, 정권 실세였는데도 로비에 실패한 이유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천 회장은 세무조사가 시작되기 몇 달 전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기후변화 리더십’ 수업을 함께 들으며 친분을 쌓았다. 또 세무조사 당시 한 전 청장과 수시로 통화를 했다. 더구나 한 전 청장은 이후로도 청장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상득 의원 쪽에 줄을 대려는 행보 등을 보여 입길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세무조사의 실패 이유가 단순히 한 전 청장의 ‘원칙’ 때문으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은 것이다.
정권 실세들의 생리를 잘 아는 박 전 회장이 천 회장에 크게 의지했던 것도 “무마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은 천 회장에게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하면서 2003년부터 세중게임박스에 직간접으로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않기로 했다. 투자금은 25억원이었고, 당시 주식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시세로 7억~8억원가량을 천 회장이 챙긴 셈이다. 세무조사 시작 이후 외국으로 몸을 피했던 박 전 회장이 9월에 귀국한 것도 천 회장의 로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결국 박 전 회장의 기대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은 이유가, 전 정권을 겨냥한 ‘기획 사정’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권과 한 전 청장이 이심전심으로 전 정권 측근의 기업인 태광실업을 겨냥했을 때부터 ‘사태’를 되돌리기는 어려웠던 셈이다. 한 전 청장도 ‘실세’보다는 대통령의 직접적인 신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천 회장으로부터 예상보다 강력한 로비를 받은 한 전 청장으로서는 이런 사실을 대통령에게 알리고,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청장이 몇 차례 세무조사와 관련해 독대를 했고, 천 회장이 청와대 쪽의 경고를 받았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박 전 회장이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게 2억원을 전달한 부분도 여전히 의문이다. 현직 비서관도 아닌 사람이 2억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이 추 전 비서관을 통해 더 강력한 실세에까지 다다랐던 것은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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