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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일본인 구하러 조선땅 들어온 미군 / 정경모

등록 2009-05-28 19:14수정 2009-05-28 21:22

1945년 9월 9일 오후4시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운데)가 미군 남한사령관 존 하지(오른쪽) 중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통치이양 문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아베는 할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다친 상태였다. 일제 36년 지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45년 9월 9일 오후4시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운데)가 미군 남한사령관 존 하지(오른쪽) 중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통치이양 문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아베는 할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다친 상태였다. 일제 36년 지배가 끝나는 순간이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9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마닐라의 미군 제24군단과 조선의 일본군 제17방면군 사이에 무선 연락이 시작된 것은 1945년 8월 31일 오후 6시. 지정된 주파수는 주간 4550, 야간 1050킬로사이클이고, 언어는 영어라고 지정되어 있었어요. 그때 총독부에 영어를 잘하는 오다 야스마라는 보좌관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리다.

아무튼 무전 교신이 시작되자마자, “경찰에 대한 조선인 폭도들의 폭력행위는 눈뜨고 볼 수 없는 형편이다”, “무기·탄약의 약탈이 각지에서 횡행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독립을 선동하는 자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어 평화와 질서는 문관의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군이 상륙하게 되면 조선인 적색노동조합들이 파괴공작을 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선인에 대한 터무니없는 중상과 욕지거리가 서울에서 마닐라로 홍수처럼 흐르기 시작한 것이외다.

무선 나흘 만인 9월 4일, 남한 주둔 미군사령관인 하지 중장은 휘하 24군단 장병들에게 긴급 통고문을 내립니다. “조선인들은 미국의 적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항복에 부수되는 모든 조건을 이행할 의무를 지니는 한편, 일본인들은 우리의 우호국민으로 간주한다.”

44년 6월 나치스 독일을 치고 프랑스를 구하고자 노르망디 상륙을 감행했던 미군이 그로부터 1년3개월 뒤 인천 상륙 때에는 거꾸로 일본을 구하고 조선을 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아~이것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역설이오이까.

마침내 하지 일행이 인천에 도착한 9월 8일, 인천 주민들은 ‘좋아라’ 만세를 부르면서 월미도 부두로 몰려가지 않았겠소이까. 그러나 검정 경찰복으로 갈아입은 일본군 무장부대가 버티고 서서 접근을 막았던 것이외다. 그래도 군중들이 부두 쪽으로 들어가 미군을 환영하려고 하니까, 일본군은 즉각 발포해 두 사람을 쏴 죽였어요. 그때 죽은 두 사람은 건준 산하의 치안대 소속인 권평근과 이석구였다고 브루스 커밍스의 책(<한국전쟁의 기원>)에 나와 있소이다. 조선 사람은 절대로 접근시키지 말고, 말을 안 듣거든 쏴죽여도 무방하다고 하지는 미리 일본 사람들에게 허가를 줬던 것이오이다. 해방의 그날, 미군이 뿌렸던 삐라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겠소이까?

상식적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은 50년 6월 25일이라고들 알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45년 9월 8일, 이미 그 전쟁은 시작됐다는 것이 커밍스의 일관된 주장인 것이외다.

이제 그 영어 잘하는 오다 야스마 얘긴데, 9월 6일 하지에 앞서, 미군 선견대 31명이 서울로 들어와 총독부의 일본인들과 흥겨운 술잔치로 며칠을 지냈다는 것이외다. 선견대 인솔자인 준장 해리스는 김포비행장에 도착해 총독부 환영단이 마련한 차로 숙소인 조선호텔로 가는 도중, 차에 동승한 통역에게 “미스터 오다 야스마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통역이 바로 오다였소이다. 해리스는 조선에 와 있던 한 선교사로부터 “영어가 유창하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오다의 얘기를 듣고 왔다는 것이외다.

선견대의 임무는 후속부대를 위한 숙소·병원·창고 등의 제공을 요구하는 비교적 간단한 사무였으니, 일이 끝나자 곧 연회를 시작해 새벽 3시께까지 호화찬란한 술잔치를 즐겼다고 기록돼 있소이다.


이튿날 오전 10시, 아직 입에서 술냄새가 가시지 않았을 해리스의 미군 쪽과, 잔뜩 긴장했을 엔도 정무총감의 총독부 쪽이 총감 응접실에서 실무에 관한 회의를 시작하였는바, 우선 해리스는 앞으로 미군이 현존하는 총독부의 인원과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려는데 이의는 없겠는가 하고 운을 떼었소이다.

이건 뭐 그야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로소이다’가 아닌가. 쾌재를 부른 엔도가 “지금 장군께서 하신 말씀은 중대 사항이니만치 문서로 남겨도 되겠는가”고 묻자, 약간 취기가 깬 해리스는 “본건을 정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뒤에 올 하지 준장이며 본관의 임무는 우리의 뜻을 간단히 알리고, 그 준비를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라”고 말했더이다.

아무튼 그때 회의에서 합의된 양해사항은 다음과 같소이다. ‘미군사령관은 행정 전반에 걸쳐 일본 총독에게 지령을 내리되, 구체적으로 행정에 대한 관리와 감독은 기존 기구인 총독부를 통해 실시한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맥아더 사령부가 천황제를 유지시키되 통치 시책의 실시는 기존 일본 정부기구에 일임한다는 정책을 썼듯, 미군은 남한에서 총독부를 그대로 두고 모든 통치 행정까지 맡긴 셈이올시다. 그러니 카이로 선언은, 그 시점에서 이미 부도수표가 된 것이외다.

기묘한 우연의 장난이라고 할까, 51년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됐을 때 나는 맥아더 사령부의 파견으로 거기서 통역 일을 하게 되는데, 해리스 준장도 거기 와 있어 그의 통역 노릇도 했소이다. 오다 야스마의 일을 내가 되풀이한 꼴인데, 이거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기묘한 우연이 아니오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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