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삼성 편법승계 ‘면죄부’]
29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삼성사건 고발인 단체 등은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이나 정·관계 금품 살포 의혹 등이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를 거치며 ‘사장’된 상황에서 경영권 불법승계의 핵심 대목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에도 면죄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5개 단체는 공동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집단의 초법적 경제권력 앞에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금 16억원만을 내고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한 행동이 배임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인 문제제기가 대법원까지 오는 데만 12년이 넘게 걸렸다”며 “국민들은 사법부가 사법정의와 경제질서를 확립해 주기를 염원했지만, 대법원은 납득할 수 없는 법논리로 이런 염원을 철저히 외면했다”고 밝혔다.
김영희 경제개혁연대 부소장(변호사)은 “대법원은 신주인수권부사채 또는 전환사채를 주주를 대상으로 배정할 경우에는 아무리 헐값에 넘겨도 회사에 손해가 없다는 형식적인 법논리를 동원했다”며 “구조조정본부의 지시에 따르는 계열사들이 이재용씨에 대해 채권을 넘기는 행동을 한 것이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도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이 진실을 폭로한 뒤 검찰과 특검, 법원까지 누구도 진실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오늘 판결을 통해 김용철 전 팀장과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 것이 됐으니, 책임을 물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두고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회사에 50억원 이상의 손해를 끼쳤다면,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며 “자료를 종합해 당시 에스디에스 주식 가격을 산정한 뒤, 이를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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