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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국세청장 별동대, 재계 620위권 기업 ‘먼지털기 조사’

등록 2009-06-03 08:33수정 2009-06-03 10:17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세무조사한 서울 효제동 서울지방국세청 효제별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세무조사한 서울 효제동 서울지방국세청 효제별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태광실업 세무조사 풀리지 않는 의혹
배경에서 사후처리까지 의문투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사정 정국’의 첫 불씨를 키운 건 국세청이 지난해 7월말부터 태광실업 등 박연차 전 회장의 주요 계열사를 상대로 벌인 특별 세무조사다. 하지만 국세청 최정예 멤버들이 연간 매출액 3000억원대의 지방 중견기업을 넉달 동안이나 먼지 털듯 뒤진 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그 ‘배경’과 ‘진행과정’, 그리고 ‘사후처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깔끔하게 풀리지 않는 의혹이 수두룩하다.

촛불몰린 정권·유임노린 청장 손뼉 마주쳤나
■ 특별 세무조사 나선 배경은?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시기는 이른바 ‘촛불사태’로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린 직후다. 대표적인 사정기관인 국세청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태광실업의 휴켐스 주식 매입 등 이전 정부 시절에 이뤄진 2~3년 전의 비리 혐의를 근거로 특별 세무조사를 벌인 데는 위기에 몰린 정권의 입김이 직간접으로 전달됐으리라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정황도 뚜렷하다. 참여정부 후반기에 임명된 한 청장은 정권 교체 후 유임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닌 흔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이뤄진 국세청 인사 뒤 국세청 내부의 일부 대구·경북(TK)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청장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일자, 정권 핵심에게 잘 보이려는 그의 행보가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한 청장은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였다. 국세청은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세정’을 외치며 기업에 불편을 주는 세무조사를 대폭 줄이고, 특별 세무조사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즈음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은 모범납세자로 상까지 받은 <한국방송>(KBS) 외주업체들에 들이닥쳤고, 7월말에는 태광실업과 그 계열사에 대한 원정조사까지 벌였다. 이를 사실상 한 청장이 진두지휘했다. 국세청 안팎에서 이번 세무조사를 ‘정치적’ 잣대로 바라보는 주된 이유다.

부산청 관할 제쳐가며 국세청장 진두지휘
■ 왜 서울청 조사4국이 나섰나?

세무조사 형식도 단연 논란거리다. 부산지방국세청 관할인 김해의 태광실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선 것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3과다. 서울청 조사4국은 심층·기획조사만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사실상 청장의 하명을 받아 움직이는 ‘별동대’로 불린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의 공식 입장은 “지방청간의 교차조사였을 뿐 특별한 배경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현실과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국세청 출신의 한 인사는 “아무리 기획조사라 해도 대개 구체적인 탈세 제보가 있거나 특정 업종을 묶어 조사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재계 서열 620위권의 지방 소재 신발업체 하나만을 콕 찍어 서울청 조사4국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의도가 있는 경우”라고 말했다.


과거 서울청 조사4국이 벌인 세무조사 사례와 견줘 봐도 이런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1991년 당시 현대그룹 전 계열사가 대상이 된 상속·증여·법인세 탈루 의혹, 지난해 9월의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서울청 조사4국 손을 거친 사건은 대부분 처음부터 검찰 수사로 이어질 ‘싹수’가 있는 사건들이다. 그만큼 정치적 배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청장이 자신의 핵심 측근을 서울청 조사4국에 집중배치해 정치적 행보에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한 청장은 앞서 지난해 2월엔 새 정부 실세들에게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지난 대선 자금줄을 캐겠다는 뜻을 전하고, 서울청 조사4국 인력으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사무실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김앤장은 2000년 이후 국세청이 4차례나 성실 납세자 표창을 했던 곳으로, 당시 조사 실무를 맡았던 이광우 조사4국 4과장은 지난해 연말 한 청장의 인사 청탁 ‘골프회동’에 연루되기도 했다.

추정액 안 밝히고 고발해 탈세액 축소 논란
■ 세무조사 로비 이뤄졌나?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벌인 국세청이 정작 뒤에서는 세무조사 로비를 받았는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지난해 11월25일 국세청은 박연차 전 회장이 모두 242억원의 세금을 탈루했다며 이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정작 얼마를 세금으로 추징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포탈 부분은 검찰에 고발했고, 탈세 혐의로 세금 추징도 했다. 거기까지는 확인해줄 수 있다. 하지만 검찰 고발 세부 내용이나 얼마를 추징했는지 등은 조세기본법에 따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설령 로비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실제 조사를 담당했던 실무진보다는 한 청장에게 집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청의 한 국장급 인사는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텐데, 로비에 넘어갔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며, “이번 세무조사는 사실상 한 청장 스스로 진두지휘한 만큼 만일 로비가 이뤄졌다면 청장 개인에게 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검찰에 넘기지 않은 자료 있나?

국세청이 검찰에 세무조사 자료를 넘기면서 탈세 액수나 대상 등을 축소했는지도 논란거리다. 국세청이 검찰에 넘긴 자료는 주로 박 전 회장이 홍콩에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에이피시(APC) 계좌에 들어 있는 배당금에 대한 종합소득세 탈루 부분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박 전 회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사이의 자금거래 흔적을 이미 파악했음에도 이 부분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 관계자는 “검찰 고발을 위해서는 박 전 회장의 탈세 혐의 자료만 넘겨주면 됐다”고 말해, 별도의 자료가 남아 있음을 내비쳤다.

박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3월, 한 전 청장이 전격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한 것도 이런 의혹을 부풀리는 요소다. 한 전 청장은 태광실업 특별 세무조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 도피중인 한 전 청장의 손에 들어 있는 카드가 예상보다 훨씬 폭발력이 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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