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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정’ 칼 들고 ‘청부수사’…중수부 사건 무죄율 급증

등록 2009-06-03 21:20수정 2009-06-03 21:28

이인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3일 낮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구내식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이인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3일 낮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구내식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MB정부 들어 압수수색 등 영장신청 남발
상당수 1·2심서 무죄판결 ‘무리한 수사’ 방증
“절제와 품격 잃은 검찰…쇄신책 마련해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최고의 수사부서로 평가받던 때가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구속하고, 불법 대선자금을 파헤칠 때 당시 중수부장들은 ‘국민검사’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그런데 그 중수부 수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뤄진 대대적 사정수사의 판결에서 무죄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보철강 인수와 관련해 15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로 기소된 김현미 전 민주당 의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이 대학 동창인 문아무개(47)씨에게서 한보철강 인수 과정의 문제점을 국정감사에서 지적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며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문씨가 여러 차례 진술을 바꿨음에도 신빙성을 따지지 않고, 문씨의 말과 그가 적어둔 메모장을 거의 유일한 증거로 법원에 제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문씨는 1, 2차 검찰 진술까지는 2004년 8월20일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이 그해 8월16일부터 20일까지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검사에게서 전해듣고는 8월24일에 돈을 건넸다고 말을 바꿨다. 문씨가 김 전 의원에게 건넸다는 뇌물의 액수도 2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번복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문에서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한 문씨의 4차례 진술 가운데, 1, 2, 3차 진술 때는 검찰이 진술거부권(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아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문씨의 진술은 여러가지 모순이 발견되고, 공소사실을 자백하게 된 동기에도 의심이 들어 믿기 어렵다”며 “범죄 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어 무죄”라고 판단했다.

지난해에 벌인 공기업 비리 수사에서도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나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서아프리카 유전개발 사업에서 시추비 등을 과다 지급해 회사에 45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배임)로 김아무개 전 한국석유공사 해외개발본부장을 기소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시추작업이 진행된 20개 광구 탐사사업 가운데 15곳에서 시추비가 증액돼 시추비용의 증가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수사의 최초 목적은 시추자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어서, 수사 초기에 계약과 대금 지급 조건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수사의 잘못을 직접 언급했다. 검찰은 한국석유공사가 자체 감사를 통해 해당 사업에서 3천여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자체 보고서를 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시추비용 증가분 45억여원을 모두 범죄 사실로 판단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피의자)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조차 무시한 셈이다.

이밖에도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은 많다. 법원은 ‘대우 구명 로비’ 의혹을 받은 재미동포 사업가 조풍언씨 사건에서도 “김우중 전 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중부발전 정아무개 대표의 경우도 주식매매대금으로 주고받은 1억원을 알선수재 액수에 포함시켜 해당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대검 중수부는 한수양 전 포스코건설 사장이 공사 수주를 돕는 대가로 4만달러를 받았다며 기소했지만, 법원은 “미화 4만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모두 420여억원에 이르는 공사를 수주하게 하는 등의 부정한 청탁 대가로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사건 무죄율 추이
검찰 기소사건 무죄율 추이
검찰은 ‘절제와 품격’을 복무지침으로 정했지만, 수사 결과는 사뭇 달리 나타나고 있다. 2006년 5만8678건이던 압수수색 영장 발부 건수는 2008년 9만1454건으로 크게 늘었다. 무차별적인 누리꾼 수사의 여파로 이메일 내역 조회 등에 쓰이는 ‘통신사실 자료요청’ 발부 건수도 2006년 5만8711건에서 2008년 6만8301건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영장 발부 건수는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9년 4월까지 압수수색 영장 발부 건수는 3만3886건, 통신사실 자료요청 발부 건수는 2만505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 각각 15.6%, 14.1%가 늘었다.

무리한 수사는 무죄율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 대검찰청의 1·2심 무죄 현황을 분석해보면, 검찰이 기소했지만 1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 지난해 4025명을 기록하는 등 2005년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여건의 악화를 이유로 들며 지난 1월 △미국식 ‘플리바기닝’ 제도 도입 △‘사법정의 방해죄’ 신설 △중요 참고인 출석의무제 등 수사 편의를 높이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근 피의자의 인권을 위한 장치가 강화되면서 수사력이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검찰의 시각은 수사편의적인 발상”이라며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진 만큼 검찰 내부의 자성과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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