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공판…진술 미뤄
연녹색 수의를 입고 공판정에 모습을 드러낸 정상문(63)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박연차(64·구속)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 3억원과 백화점 상품권 1억원 어치를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그의 첫 공판이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지만, 심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친구이자 집사로서 30년의 연을 맺어온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그는 공판 내내 말을 잇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 했다. 신원 확인을 위해 주소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겨우 뱉어냈고, 다른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거나 머뭇거렸다.
검찰의 모두 진술로 공판이 시작된 뒤 정 전 비서관의 변호인인 최정수 변호사는 “대통령 서거 뒤 장례에 다녀오고 나서 정신적 부담감 때문인지 심신이 매우 불안정해 사건에 대해 잘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피고인의 심신이 회복되면 구체적인 사실을 정리해 다음 기일까지 공소사실에 대한 답변을 재판부에 내겠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이 정 전 비서관에게 변호인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를 묻자, 정 전 비서관은 고개만 끄덕이다 “심정이 황당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다음 재판 날짜를 정한 뒤에도, 정 전 비서관은 몸을 가누기 어려운 듯 천천히 재판정을 나섰다. 최 변호사는 “정 전 비서관이 식음을 전폐할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며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상태여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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