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중나모, 삼성 출장업무 27년간 독점
‘절친’ 이건희 후광업고 사업 탄탄대로
정·관계-삼성간 로비스트설도 나돌아
‘절친’ 이건희 후광업고 사업 탄탄대로
정·관계-삼성간 로비스트설도 나돌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상대로 한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로비, 포스코 회장 선임과정 개입, 씨제이그룹 세무조사와 관련한 모종의 역할….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천씨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 리스트다. 위법성 여부를 떠나 정·관·재계를 아우르는 그의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와 행동반경에 먼저 놀라게 된다. 재계의 ‘숨은 마당발’인 그를 정작 재계에서는 뭐라 할까?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천 회장은 재계가 다 아는 ‘삼성맨’”이라며 “이건희 전 삼성회장과 아주 특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이재현 회장이 왜 천씨를 아저씨라고 부르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재현 회장의 삼촌인 이건희 회장과 천씨가 아주 가깝고, 그 연원이 이재현 회장이 어렸을 때인 3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삼성 전체 출장 대행 27년째 독점하는 수완 천씨와 이건희 회장의 ‘아주 특별한 관계’는 세중과 삼성의 사업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천씨가 1982년에 만든 세중여행사는 지난 27년간 17만 삼성 임직원들의 국내외 출장 대행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겠느냐”고 되묻는다. 삼성은 임원만 1500~1600명에 이른다. 이들은 한해 평균 4~5번씩 해외출장을 간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대부분 비지니스석 이상 비행기와 고급 호텔을 이용하니까 한번 출장에 수백만원씩 들어간다”며 “세중은 다른 곳보다도 더 비싸니까, 이윤을 많이 남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의 또다른 고위 임원이 들려주는 일화도 흥미롭다. “이 회장의 세 딸 중 하나가 몇년 전 세중이 맡고 있는 삼성 임직원 출장 대행업무를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졸랐어요. 자신이 맡은 삼성 계열사의 경영 실적이 신통치 않자 새로운 수익원으로 생각한 거죠. 하지만 이 회장은 딸의 간청을 끝내 들어주지 않았어요.”
천씨와 삼성의 사업관계는 최근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삼성중공업의 조선용 강재 관련 물류사업을 맡기 시작했다. 세중은 또 수원삼성축구단 공식공급업체이고, 삼성전자로지텍과도 물류업무 위탁계약을 맺었다. 천씨가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기업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삼성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세중나모여행사(옛 세중여행사)의 사무실도 서울 태평로의 삼성생명빌딩 19층에 있다. 삼성 사옥에 다른 회사가 들어가 있는 것은 전례가 드물다. 천씨는 “27년간 삼성, 포스코 등 500개 기업을 상대로 상용 여행시장 1위를 차지하면서, 줄곧 흑자를 냈다”고 자랑스워했는데, 삼성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세중과 삼성, 사업 관계 그 이상?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이 해외에 나갈 때마다 천 회장이 거의 동행을 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 회장이 끔찍하게 좋아하는 말이나 개 등을 해외에서 국내로 들여올 때도 천 회장이 중간에서 대신 챙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씨와 이 회장의 이런 끈끈한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천씨는 이 회장보다 나이가 한살 적다. 부산 출신으로 경남고와 고려대를 나온 그는 이 회장과 직접적인 지연·학연이 없다. 천씨 자신은 “이 회장과의 인연은 레슬링으로 맺어졌다”고 말한다. 이 회장이 82년 레슬링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를 국제담당이사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천씨는 이 회장이 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면서, 협회장 자리를 이어받는다. 체육계에서는 그를 이 회장의 대리인 쯤으로 여긴다. 이 회장은 지금도 레슬링협회의 명예회장을 맡으며 자금 지원을 한다. 삼성 계열사의 임원은 “천 회장은 이 회장이 아이오시 위원이 될 때도 활약이 컸다고 한다”고 말했다.
천씨와 삼성의 인연이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도 있다. 삼성 계열사의 임원은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천거로 천씨를 만났는데, 아주 맘에 들어하며, 아들인 이건희 회장(당시 부회장)에게도 가깝게 지내라고 권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천씨가 박 명예회장과 알게 된 것은 사업 때문이다. 그는 서른한살 때 수도관 관련 사업을 하는 제철화학(현 동양제철화학)을 세웠는데, 포스코가 원료 공급 회사였다. 천씨는 당시 포스코 장학재단에 회사 주식의 35%와 이익금의 35%를 기부해 박 명예회장의 눈에 들었다. 천씨 스스로도 박 명예회장을 이건희 회장과 함께 “대부 같은 분들”이라고 말한다. 천씨와 삼성의 인연을 전두환 정권과 연결짓는 이들도 있다. 삼성 방계그룹의 한 임원은 “천씨가 자신과 학연으로 가까운 5공 실세를 삼성에 연결시켜주면서 관계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 삼성 “우리 로비스트? 말도 안된다” 천씨의 5공 실세 연결설이 시사하듯, 천씨가 삼성을 위해 일종의 로비스트 노릇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자신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관계와 삼성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임원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내부 회의 때 여러 번 천 회장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다”며 “천 회장이 대외적으로 삼성을 위해 여러 심부름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도 “요즘 천신일 게이트로 삼성의 속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천씨와 관련해서는 일체 입을 다문다. 장충기 삼성브랜드관리위원장(사장)은 천씨와 이건희 회장의 관계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중에 27년간 임직원 출장 대행업무를 맡긴 이유에 대해 “효율성 차원(일을 잘한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래업체를 반드시 복수로 둔 뒤 경쟁을 시켜서 비용절감을 하는 삼성의 경영 원칙을 고려할 때 세중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삼성은 천씨의 삼성 로비스트설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펄쩍 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그는 평소 하나를 하면 열을 했다고 말하는 스타일”이라며 “그런 사람에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을 맡기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천씨와 고려대 동창인 한 인사는 “박연차 사건이 표면화되기 직전 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니, 현 정부 실세니 하며 이름이 자꾸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는데, 결국 사건이 터졌다”고 말했다.
■ 탁월한 인맥관리와 친화력 천씨가 정·관·재계를 망라해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데는 그의 특이한 경력이 한몫한다. 그는 사회 초년병 시절 정치인의 꿈을 꿔, 윤천주 전 서울대 총장의 의원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이후 철강회사 중역을 지낸 장인을 도와 수도관을 생산하는 동양철관 상무로 재직했는데, 당시 이 회사의 사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장조카인 박재홍씨였다. 그는 일찍부터 권력 핵심부와 만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천씨의 지인들 중에는 그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많다. 대학 동창인 한 인사는 “천 회장은 평소 주변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잘 챙겨주는 다정다감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절 때마다 지인들에게 작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을 꼭 챙겨 보낸다고 한다. 특유의 친화력과 인적 네트워크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씨는 사회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85년에는 포스코에 포항공대 부지 6만3천평을 기부했다. 또 2007년에는 세중나모여행의 주식 110만5천주(당시 시가 110억원)를 기부해 화제가 됐다. 고려대 출신인 한 재계인사는 “그는 자신의 지연과 학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라며 “그가 청탁을 하고 인사에 개입했더라도 특별히 자신의 금전적 이득이나 이권을 챙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씨는 검찰의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재계는 앞으로 천씨의 불똥이 어느 기업과 기업인으로 옮겨붙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천씨의 지인들 중에는 그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많다. 대학 동창인 한 인사는 “천 회장은 평소 주변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잘 챙겨주는 다정다감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절 때마다 지인들에게 작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을 꼭 챙겨 보낸다고 한다. 특유의 친화력과 인적 네트워크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씨는 사회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85년에는 포스코에 포항공대 부지 6만3천평을 기부했다. 또 2007년에는 세중나모여행의 주식 110만5천주(당시 시가 110억원)를 기부해 화제가 됐다. 고려대 출신인 한 재계인사는 “그는 자신의 지연과 학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라며 “그가 청탁을 하고 인사에 개입했더라도 특별히 자신의 금전적 이득이나 이권을 챙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씨는 검찰의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재계는 앞으로 천씨의 불똥이 어느 기업과 기업인으로 옮겨붙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