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호흡기 떼기로 결론…시기·절차 가족과 협의
치료될 가능성이 더는 없고 연명 치료를 중단하면 숨질 것으로 추정되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존엄사’가 시행될 전망이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은 10일 오전 병원 윤리위원회를 열어 지난달 21일 대법원으로부터 ‘인공호흡기 등 연명 치료를 중단해도 된다’는 판결을 받은 김아무개(77·여)씨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기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병원 내·외부 인사 23명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8시께부터 3시간 가까이 회의를 열어 대법원 판결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람, 시기나 절차 등은 결정하지 않았다고 병원 쪽은 밝혔다. 윤리위 회의에선 ‘1년 이상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떼어내느냐’는 의견도 나왔으며, 인공호흡기를 주치의가 제거할지, 더 책임 있는 인사가 할지도 논란이 됐다. 금기창 세브란스병원 홍보실장은 “앞으로 윤리위 소위원회가 보호자들과 충분히 협의해 자세한 (존엄사 시행) 시기, 방법, 절차 등을 논의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쪽이 자체 마련한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보면, 현재 김씨의 상태는 존엄사 3단계 가운데 2단계인 ‘인공호흡이 필요한 식물인간 상태’로 판단된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것만으로도 김씨의 생명 연장은 길어지지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윤리위도 ‘존엄사 시행’을 결정함에 따라 존엄사 논란은 더 확산될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등 몇몇 병원들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하게 해,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 등은 연명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 가능성이 있는데도 경제적 이유 등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환자들이 저소득층 가운데 생겨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치료비를 더는 댈 수 없는 환자 가족이 처벌을 각오하고라도 연명 치료를 중단시킨 사례는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며 “저소득층이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계도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만들 수 있다’며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박수진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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