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엄씨는 누구
“나는 순례자, 떠도는 영혼!”
예멘에서 무장단체에 납치·피살된 한국인 여성 엄영선(34·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씨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수원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대전 침례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를 나온 엄씨는 블로그에서 자신의 별명(닉네임)을 ‘막달레나’로 표시했다. 흔히 ‘막달라 마리아’로 불리는 막달레나는 예수의 열렬한 추종자로 성서에 나타나 있고,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선교 성녀’로 숭배됐다.
국내에선 초등생 영어학습지 교사로 일했다는 엄씨는 2004년부터 영국 런던 근교에 머물며 봉사단체 일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여동생 엄미선(30)씨가 전했다. 각종 기도문과 종교적 신념을 다지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엄씨의 블로그에는 2004~2007년 사이 네덜란드와 터키를 다녀왔다고 적었다.
이후 비영어권 나라에서 봉사단체 회원들의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 엄씨는 지난해 8월 국제의료봉사단체인 네덜란드 비정부기구 ‘월드와이드서비스’에 가입해 같은해 10월 예멘으로 떠나 피랍 직전까지 예멘 사다에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이 단체 의사 자녀 교육 등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엄씨의 아버지(62)는 지난 15일 밤 기자들에게 “8월 초 귀국할 예정이었다”며 “일주일 전 딸이 안부전화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블로그에서 “올 연말 터키로 갈 계획”이라고 밝힌 엄씨는 “한 달에 한두 건씩 외국인 납치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는 종종 수도 사나를 여행해야 하며, 그때마다 하나님의 가호를 구한다”고 써 현지의 불안감을 나타냈다. 2005년 7월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안전지대를 떠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꿈을 버렸다면 그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내 꿈을 버리지 않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05년 11월 개설된 이 블로그에는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샘물교회’ 신도들과 관련된 외신 기사와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271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찍은 사진 100여장과 자신의 거처를 소개하는 짤막한 동영상 5건도 올라와 있다.
엄씨의 아버지와 여동생은 예멘을 향해 16일 밤 11시55분께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엄씨의 어머니는 5년 전 지병으로 숨졌다고 동생이 전했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