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9일, 무상급식 예산안 삭감에 찬성한 경기도교육위원회 위원들은 교특추경예산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에 나섰다. 박수진 피디
김 교육감 핵심 추진정책 ‘칼질’…‘진보 흔들기’ 비난
학부모들 “아이들 밥값보다 중요한 사업 있나” 비판
학부모들 “아이들 밥값보다 중요한 사업 있나” 비판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지난 23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핵심 공약이었던 무상급식 예산을 절반으로 깎은 것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예산을 삭감하는데 앞장선 경기도 교육위원회 교육위원 7명은 ‘7적’으로 불리며 곳곳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해당 위원들의 누리집은 다운되고, <아고라>에서는 ‘경기도 교육위원회 각성 촉구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몇몇 사람들은 교육위원들의 전화번호를 구해 문자메시지로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 교육위원들은 며칠 동안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기자들은 이들과의 접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일은 벌여 놓고 책임질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꼴이다.
경기도 ‘무상급식 예산삭감’ 민주적으로 처리? [%%TAGSTORY1%%]
무료급식 예산 50% 깎자 학부모 반발
경기도 교육청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교육환경에 놓인 농산어촌과 섬·외딴 곳(도서벽지), 도시 내 3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 초등학생 15만 3520명에게 무상급식을 하기 위한 예산 171억 원의 승인을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요청했었다. 하지만 교육위원회는 세 번의 추경예산안심사 절차를 거친 끝에 애초 예산의 50%인 86억여 원을 깎아버렸다.
학부모들은 들끓었다. “아이들 밥값보다 더 중요하게 쓰여야 할 사업이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배옥병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결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료급식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농성도 시작됐다. 이재삼, 최창의 교육위원은 지난 22일부터 8일 동안 경기도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재삼 위원은 말문을 잊지 못했다. “회의 끝나고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워서….” 한 은퇴한 교장은 농성장을 찾아 애끓는 심경을 토로했다. “짐승들도 제 새끼 먹여 살리려고 스스로 굶어가며 먹이를 구해다 주거늘….”
교육감만 바뀌었을 뿐인데…‘김상곤 흔들기’
전임 김진춘 교육감 시절, 스승의 날 교사 밥값을 지원하기 위해 27억의 예산을 통과시켰던 경기도 교육위원회였다. 적어도 ‘밥값 예산’만큼은 인색하지 않았던 교육위원회였기에 초등학생 무상 급식 예산안 삭감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교육위원 구성원은 이전과 변한 게 없다. 다만 1년 사이 교육감만 김진춘 교육감에서 김상곤 교육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게다가 전체 추경예산안 3656억 6500만 원 중 교육위원들이 ‘칼질’을 한 예산은 무료급식과 혁신학교 추진 비용, 청소년인권조례 제정 비용 등이다. 모두 김 교육감이 추진하려 한 핵심 정책에 사용할 돈이었다. 때문에 이번 예산안 삭감을 두고 ‘진보 교육감 흔들기’ 차원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예산 삭감 주도 교육위원들 해명기자회견 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예산 삭감에 동의한 경기도 교육위원회 교육위원 7명은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산 삭감 일주일만이었다. 절반은 사과, 절반은 변명에 가까운 기자회견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50% 삭감한 것에 대해 심려를 끼쳐 유감스럽다”며 “앞으로 의회 활동 과정에서 소수 의견을 좀 더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따가운 여론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하지만 예산을 절반으로 토막 내 버린 이유에 대해선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이 이어졌다. 이들은 “내년에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무상급식비의 경우 한번 지원하면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사업이라 승인에 앞서 검토가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또 “도시, 농산어촌, 도서벽지 구분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도내 전체 학생들이 골고루 무상급식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의미에서 수많은 논의와 숙고 끝에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00명 이하 소규모 학교들에 일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면 부잣집 자녀들에게도 무상급식이 이뤄져 예산 낭비’라는 것이다.
이런 해명은 되려 거센 역풍에 휘말렸다. 경기도 내 21개 시군 267개 학부모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학교급식을 위한 경기도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보도자료를 내어 “무상급식비를 삭감한 7명의 교육위원은 변명과 억지 논리로 다시 한번 학부모 국민을 우롱하고 분노케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운동본부는 또 “아직도 어린 학생들이 자존심 때문에 무상급식지원비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가난한 학생에게만 무상급식을 먹게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교육위원들에게 반문하고 싶다”고 반박했다.
속기록에 “무상급식이 의타심 키워 교육상 좋지 않다”
7명의 교육위원은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돈창 위원은 “새로운 분(김상곤 교육감)을 흔들기 위한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예산을 농산어촌, 산간벽지, 도시 소규모 학교에 한정하지 말고 대도시 학교 학생들도 혜택을 입게 해 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예산심의 회의 속기록을 보면 교육위원들의 해명은 수긍하기 어렵다.이들은 회의 내내 무료급식 정책 전반에 걸쳐 비판적인 의견을 냈었다. 6월13일 김상곤 교육감을 상대로 열린 교육행정질의 시간에 강관희 위원은 “농어촌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하는 것은 의타심만 기르고 교육상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예산이 부족하다거나, 경제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 경기도 교육청이 시행하려 했던 무료 급식은 2008년 잉여예산에서 집행될 예정이었다.
교육위원들은 김 교육감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한상국 위원은 “김상곤 교육감은 운 좋게 서울대 출신으로 교육감에 당선됐다”고 헐뜯었고, 최운용 위원은 “도민이 직선제로 선출한 교육감이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을 특권교육이라고 비판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인지”라고 따졌다.
이 때문에 교육위원 7명이 내린 이번 예산 삭감 결정이 ‘김상곤 흔들기’라는 의견이 많다. 교육행정질의 회의록을 살펴 본 김선희(34)씨는 “회의록을 읽어보면 정치적 예산 삭감이 아니었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 삭감에 반대한 2명의 교육위원 중 한 명인 최창의 위원은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제가 2002년부터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7년간 교육위원을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예전에는 교육감의 설명을 경청하는 수준으로 질의를 마쳤어요. 하지만 김 교육감에 대해서는 질문 순간부터 날이 서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을 리 없습니다.”
김상곤 교육감 “돌부리는 어디나 있기 마련”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임기 1년 2개월의 김상곤 교육감이 ‘사실상 아무 일도 못하고 임기를 마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교육감은 이미 당선자 시절부터 수모를 겪었다. 지난 4월 경기도 교육청은 당시 김 교육감 당선자에게 업무 보고하는 것을 거부해 논란이 됐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보고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말 뿐, 누구로부터의 지시인지는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김 교육감의 수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 교육감이 지자체 업무보고를 가면 지자체장들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인구 180만 명의 교육 수장에 대한 이런 푸대접에 “교육위원들도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조현무 위원)라는 뒷말이 나온다.
푸대접에 예산안 발목까지 잡혔으니, 김 교육감의 남은 1년은‘개혁의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김 교육감도 느끼고 있었다. 김 교육감은 지난 30일 <하니TV>와 인터뷰에서 “아직 진보적인 교육 정책을 펴기엔 조건이 안되어 있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여전히 꿋꿋하게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 비관보다는 희망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김 교육감은 “돌부리는 어디를 가든 있는 것”이라며 “대화로 풀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 교육감 교육정책의 미래는?
반 토막 난 ‘아이들의 급식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김 교육감에게 희망이 없지는 않다. 7일 열리는 경기도 의회에서 예산을 다시 심의·의결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의회가 김 교육감이 승인 신청한 예산을 다시 의결한다면 원상복구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경기도 의회의 구성을 보면 위원 13명 중 한나라당이 11명, 민주당이 2명을 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기도 의원들은 이미 5월 20일 열린 경기도의회 임시회에서 김 교육감의 공약을 두고 ‘야바위’라고 맹공격했다.
김 교육감은 “도 의원 한 명 한 명을 면담해 그들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며 “아이들 급식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닌 만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상곤에게서 ‘노무현의 그림자’
곳곳에서 김 교육감 측면 지원도 이뤄진다. 친환경학교급식경기운동본부 및 경기희망교육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일 ‘삭감 급식예산 원상회복과 무상급식 확대 경기도민 결의대회’를 열고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무료급식 예산 삭감에 항의하며 경기도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22일부터 8일 동안 농성을 벌였던 이재삼, 최창의 교육위원은 7월 중 경기도 내 학교를 돌며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위기에 처한 김 교육감의 교육개혁을 놓고 일부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교육위원회 농성장에서 만난 김아무개(40)씨는 “기득권층에 의해 개혁이 좌초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었던 그 수난을 김 교육감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표의 심판’을 벼르고 있다. 내년 6월2일 실시되는 지방자치 선거에는 시도교육감, 광역 및 기초지방 교육위원도 사상 처음으로 직선으로 선출되기 때문이다. 다음 카페 ‘교육희망네트워크’에 한 누리꾼은 “교육위원들에 대한 심판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내년 6월에 주권을 행사하자”고 주장했다.
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학부모들은 들끓었다. “아이들 밥값보다 더 중요하게 쓰여야 할 사업이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배옥병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결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료급식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농성도 시작됐다. 이재삼, 최창의 교육위원은 지난 22일부터 8일 동안 경기도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재삼 위원은 말문을 잊지 못했다. “회의 끝나고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워서….” 한 은퇴한 교장은 농성장을 찾아 애끓는 심경을 토로했다. “짐승들도 제 새끼 먹여 살리려고 스스로 굶어가며 먹이를 구해다 주거늘….”
무상급식 예산안 삭감에 찬성한 경기도교육위원들이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학생은“교육 못받고, 밥 못먹고… 이것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수진 피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하니티비>와 만난 인터뷰에서 무상급식 예산안 삭감과 관련해 유감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박수진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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