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당한 촛불 시민들 고소사건, 1년 넘도록 제자리
직장인 하아무개(35)씨는 지난해 5월 말 촛불집회에 갔다가 진압 경찰이 내리친 방패에 맞아 가운뎃손가락 일부가 찢어졌다. 다섯 바늘이나 꿰맸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고 있던 안경이 부러져나가고, 눈은 퉁퉁 부었다.
결국 하씨는 같은 해 6월 중순, 이름을 알 수 없는 전경과 소속 부대의 장, 지휘 책임이 있는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한 달 뒤 경찰에 불려가 고소인 조사도 받았다. 그 뒤로 1년이 흘렀다. 경찰에선 아직 아무 연락이 없다. 하씨는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것 같다”며 “촛불집회에 참가한 유모차 엄마들까지 소환조사하는 모습과 대비된다”고 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경찰한테 폭행당한 시민들이 경찰을 검찰에 고소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수사에는 진척이 없다.
앞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하씨를 비롯해 지난해 6~8월 촛불집회에서 경찰한테 폭행을 당했거나 불법 연행된 시민 19명을 대신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고소 대상은 군화로 차거나 방패를 휘두른 전경들이었지만, 폭행을 당할 때 상대가 어느 부대 소속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성명 불상’ 전경과 지휘 책임자, 경찰청장 등으로 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 수사를 당사자 격인 경찰에 넘겼다. 수사는 서울 종로경찰서가 맡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도록 경찰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고소인, 참고인 조사는 서면이나 직접 조사로 이미 마무리했다지만 정작 중요한 피고소인 조사는 진전이 거의 없다. 피고소인인 ‘성명 불상’ 전경이 누구인지 찾아내지 못한 사건이 많고, 경찰청장이나 서울경찰청장 등은 현실적으로 조사하기 힘들다는 게 경찰의 해명이다.
정채민 종로경찰서 수사과장은 “모두 19건의 사건 중 일부는 해당 전경과 지휘관을 찾아내 조사를 마쳤고, 못 찾아낸 전경 등 피고소인들을 빼면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확히 조사한 사람이 몇 명인지, 조사를 마친 전경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해당 전경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수사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불법 폭력을 엄단한다면서 정작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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