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왼쪽)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옛 한민통·오른쪽)의 오사카 본부. 1973년 필자가 동포 젊은이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며 첫 인연을 맺은 한국청년동맹(한청)도 오른쪽 건물에 들어 있다. 사진 <프레시안> 제공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50
야스에 편집장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그가 필독서라고 일러준 <건건록>을 탐독하는 한편 부지런히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요청받은 에세이의 집필을 시작했소이다. 그렇게 해서 400자 원고지 54장에 이르는 장문의 원고를 넘겨주었는데, 제목은 ‘한국 제2의 해방과 일본의 민주주의’였고, 그때가 1973년 5월께였다고 기억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하게도 ‘김대중 납치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날 8월 8일, 전국적으로 발매가 시작된 <세카이> 9월호에 내가 쓴 그 글이 실려 있었으니, 이건 또 얼마나 불가사의한 기적이었겠소이까. <세카이> 9월호가 일본 사회에 준 참으로 거대한 충격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나, 아무튼 그 무렵, 배동호씨에게서 갓 창간된 민족통일협의회의 기관지 <민족시보>에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곧 ‘케이(K)군에게 보내는 편지’도 연재를 하기 시작했으니 별안간에 일복이 터졌다고나 할까, 얼마나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겠소이까.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사람 네다섯 명이 집으로 찾아와 정중하게 큰절을 하더니 자기들의 연수회에 와서 강연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소이다. 내가 쓴 아사히신문사의 책도 읽었고 <민족시보>에 연재되고 있는 ‘K군에게 보내는 편지’도 읽었는데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어서 감동했노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민단을 빠져나와 배씨 그룹과 합류한 ‘한청’(한국청년동맹)의 맹원들이었소이다. 한민통의 모체가 바로 이 그룹이었던 것이지요. 선선히라고 할까 흔쾌히라고 할까, 강연 요청을 승낙하고 그들을 보낸 다음, 나는 나대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소이다. <논어>에 나이 마흔이 넘도록 무문(無聞)이면, 즉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면 부족외야(不足畏也)라, 즉 별로 대단치 못한 인물이라는 말이 있소이다. 내가 한국을 떠났을 때의 나이가 마흔여섯이었고, 그때까지 암흑 속에서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 공자 말씀 그대로 아니었겠소이까. 한국에 있었다면 어느 젊은이가 내 말씀을 듣겠다고 찾아오는 일이 있을 수 있었겠소이까. 도쿄 교외의 작은 도시 이쓰카이치라는 곳에 있는 한청의 건물 ‘화랑대’에서 연수회가 열리고 있었으므로, 약속한 날 나는 정성 들여 작성한 강연 텍스트를 가지고 그곳을 찾아갔소이다. 차별이 심한 일본 사회에서 맨 밑바닥에 깔려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생활에 대해 나 자신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터이라, 그날 강연에서는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과제로서 저변층을 구성하는 사회 계급이 지녀야 할 기개라고 할까, 마음가짐이 주제였다고 기억하고 있소이다. 그때 참고로 인용한 것이 이탈리아 작가 이그나치오 실로네가 남긴 말이었는데, 그것은 “사회의 최저층이 새로운 가치관을 획득하면 그 사회 자체가 변혁을 일으킨다”(When the lowest stratum of a society acquires a new value, the society itself will undergo changes.)는 유명한 얘기외다. 한청 회원들 중에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있고 해서, 영어로 번역된 실로네의 말을 칠판에 써 보이며 한창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그때 뜻밖에도 배동호씨가 어떤 낯모르는 사람과 같이 회장 안으로 들어왔소이다. 그가 먼 데까지 일부러 내 강연을 들으러 와 준 것이 내게는 퍽 고마웠소이다. 강연이 끝난 뒤 나는 그날 밤은 젊은 사람들과 같이 화랑대에서 묵을 작정이었는데 배씨는 같이 시내로 돌아가자면서 자기가 타고 온 차에다 나를 태우더이다. 뒷자리 맨 오른편에는 그 낯모르는 사람이 앉고 나는 왼편 자리에, 그리고 배씨는 가운데 자리한 채 차가 달리기 시작했는데, 오른편에 앉아 있던 그가 무슨 말인지 중얼중얼 내뱉고 있었소이다.
나는 일시에 피곤이 닥쳐오는 바람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참인데 얼핏 들어보니 그 말이 내게 대한 욕지거리가 아니오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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