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고미영씨가 시리도록 하얀 설원의 붉은 점 하나로 남아 있다. 고씨는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산에서 하산 길에 실족해 벼랑으로 떨어졌다. 수색에 나선 헬기는 홀로 쓰러져 있는 고씨를 발견했으나, 악천후로 접근하지 못했다. 한국방송(KBS) 화면 촬영
1500m 굴러떨어진채 발견
산악인 고미영(41·사진)씨가 11일(이하 한국시각)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산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 도중 실족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은 12일 “등반팀이 고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해 왔다”고 밝혔다. 대사관은 “현지 구조팀이 헬기로 13일 시신을 운구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고씨는 10일 낭가파르바트산을 오른 뒤 하산하다 11일 밤 실족했다. 고씨의 후원사인 코오롱스포츠는 12일 “고씨는 10일 저녁 8시30분께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 11일 밤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에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고 지점은 해발 6200m로 지형이 좁아 로프를 설치할 수 없는 10~20m 구간”이라고 전했다. 발견 당시 고씨는 1500여m를 굴러떨어졌고, 머리 쪽에 출혈이 심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걸로 추정됐다.
고씨가 실족한 낭가파르바트산(해발 8126m)은 전세계 8000m급 고봉 14좌 가운데 아홉째로 높은 봉우리로, 히말라야산맥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은 하산하기 어려운 가파른 지형이라 그동안 사고가 많았다.
고씨는 오은선(43)씨와 함께 국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 주자로 꼽혀 왔다. 1991년 산악인으로 입문한 그는 키 160㎝에 몸무게 48㎏의 작은 체구로, 2007년엔 여성 산악인 최초로 8000m급 봉우리 3개를 연속 등정하는 기록도 세웠다.
고씨는 여성 최초 ‘8000m급 14좌 등정’이라는 기록을 놓고 오씨와 경쟁을 벌여 왔다. 고씨는 낭가파르바트 정복으로 올해 4개의 봉우리에 오르며 11개를 성공했고, 오씨 역시 10일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하며 12개를 성공했다. 히말라얀클럽 오인환 회장은 “남자들도 1년에 1~2개 등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고씨와 오씨는 올해에만 5개 등정 목표를 세웠다”며 “두 사람의 경쟁과 무리한 등반 일정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산악인 고미영(4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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