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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과수 ‘무정자증’ 증거도 외면…재심 ‘바늘구멍’

등록 2009-07-16 20:08수정 2009-07-17 09:53

성폭행 혐의 수감 40대 “범인은 무정자증인데…”
대법 “증거 늦게 내” 기각…변호인 “제도 취지 어긋나”
강도 전과가 있는 안아무개(43)씨는 출소 직후인 지난 2001년 성폭행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경찰은 안씨의 지문이 피해여성의 방에서 발견됐다며 안씨를 추궁했지만, 범행이 일어난 시간에 만취해 있던 안씨는 범행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피해여성은 범인이 키 170㎝ 정도에 경상도 말씨를 썼다고 진술했지만, 서울 토박이인 안씨의 키는 161㎝였다. 안씨와 피해여성의 대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듬해 서울고법은 안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안씨가 상고를 포기하며 형이 확정됐다.

수감 생활을 하던 안씨는 2005년 ‘재심’을 청구했다. 수사 과정에서 ‘자백하지 않고 부인하면 강도 혐의까지 포함해 보호감호 처분을 받게 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폭행을 당해 거짓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베란다에서 뜬 지문을 방에서 발견했다고 속인 점도 재심 청구의 이유가 됐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범인이 무정자증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놓았지만 안씨에게선 정자가 발견됐다.

그러나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한 서울고법은 “안씨가 정액 검사 결과를 당시 재판 과정에서 제출할 수도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검사 결과가 다른 유죄 증거에 비해 객관적 우위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 청구 사유로 ‘증거의 신규성(얼마나 새로운 증거인가)’과 ‘명백성(무죄·감형 등을 인정할 정도로 명백한가)’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다.

안씨는 이에 재항고를 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4년이 흐른 16일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제출하지 못한 증거는 재심 사유에서 말하는 ‘새로 발견된 증거’에서 제외된다”며,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를 기각했다. 무정자증은 추정에 불과한데다, 재판 과정에서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를 확정 판결 뒤 제출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게 기각 사유다. 다만 대법원은 “새로운 증거와 모순되는 기존 증거를 유기적으로 평가·판단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증거의 명백성’ 부분을 다소 완화하는 판례 변경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안씨의 변론을 맡은 구인호 변호사는 “재심 제도의 취지는 유죄가 아닐 수 있으니 다시 다퉈보자는데 있다”며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지만, 판례 변경으로 재심의 기회가 넓어졌다는 점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늦어지는 동안 안씨는 이미 형기의 대부분을 채우게 됐다.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재심이 청구된 형사사건은 모두 649건(1심 기준)이다. 이 가운데 448건이 기각 또는 최하됐고, 27건은 무죄가 인정됐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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