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을 하루 앞둔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 참사 현장에서 열린 ‘생명과 평화의 현장 예배’에 참석한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용산참사 반년 ‘실종된 정부’
약자들 보호 의무 눈감은 채 ‘무대응’ 일관
쌍용차·4대강·영세상인 문제도 마찬가지
약자들 보호 의무 눈감은 채 ‘무대응’ 일관
쌍용차·4대강·영세상인 문제도 마찬가지
#1 ‘철거민’ 전재숙(68)는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날아온 고지서를 보고 가슴속에 뭔가가 치밀었다. 이미 세상을 등진 남편 이상림씨한테 ‘올해 건강검진 대상자이니 연말까지 검진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1월20일 ‘용산 참사’로 남편이 숨진 뒤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데도, 정부의 한쪽에선 남편이 아직 살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전씨는 “죽은 사람한테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나라도 있네요”라고 말했다. #2 고 이성수씨한테도 4만원가량의 의료보험비가 매달 꼬박꼬박 청구되고 있다. 보다 못한 부인 권명숙(47)씨가 지난달 건강보험공단에 보험료 청구를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 이처럼 용산 참사 희생자 5명한테는 아직도 각종 세금이 청구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산구청은 “가족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유가족 탓으로 돌렸다. ■ ‘실종’된 정부 희생자 유족들이 180일이 넘도록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싸워오는 동안, 정부는 ‘뒷수습’을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용산 참사 발생 6개월을 하루 앞둔 19일에도 이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2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하는 등 지금까지 180번의 추모문화제를 했다. 류주형 ‘용산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대변인은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국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서 정부는 법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무대응’은 용산 참사에 그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는 ‘제2의 용산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는 ‘노사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사안인데도 연일 ‘범법자’만 늘어가고 있다. 쌍용차 파업 사태에서 정부가 한 일은 노조원 2명을 구속하고 200여명을 수사하는 것뿐이다. ‘공권력만 있고, 정부는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초기에 해결할 수 있었던 갈등을 방치하는 바람에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는 게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이나 영세 상인의 생계 문제 등도 국민적 요구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대형마트 진입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상인들이나 서민들은 ‘용산 참사’를 더 이상 남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약자를 보호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으니, 이는 무책임이자 무능력”이라고 말했다. 한편, 범대위는 20일 오후 희생자 주검 5구를 밖으로 옮기는 ‘천구 의식’을 치르고 서울광장으로 나가 분향소를 만들겠다고 이날 밝혔다.
용산 참사 발생 6개월을 하루 앞둔 19일 오전, 경찰이 이 사건 희생자 주검이 안치돼 있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들머리에서 ‘용산 참사 범국민대책위’ 대표 등의 얼굴 사진이 실린 수배자 전단을 든 채 출입자들을 살피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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