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신체일부로 인정안해
뱃속 태아는 임신부의 ‘일부’일까. 형법의 잣대로는 그렇게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복통을 호소하는 임신부 박아무개씨를 잘못 진단해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상)로 기소된 대학병원 의료진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2006년 5월 임신 32주째이던 박씨는 갑작스런 복통으로 충북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시 전공의(레지던트) 2년차로 산부인과 야간 당직의였던 이아무개씨는 20분 동안 간단한 검진과 초음파 검사를 했지만 태아에게서 별다른 징후를 찾지 못했다. 이씨는 “2시간 전 자장면을 먹고 증세가 나타났다”는 박씨의 말에 따라 장염일 수 있다고 보고, 전공의 2년차로 내과 당직의였던 강아무개씨에게 이를 알렸다.
강씨는 진통제와 위장약 등을 처방했지만 박씨는 새벽 내내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태아는 박씨가 병원을 찾은 지 7시간여 만에 ‘태반 조기박리’로 숨졌다. 이들은 박씨에 대한 상해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은 이씨에게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두 사람 모두 죄를 인정하고 각각 벌금 3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법이 태아를 독립된 행위 객체로 하는 낙태죄를 두고 있는 점 등에 비춰 태아를 임신부 신체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되며 낙태죄가 아닌 경우 임신부 상해도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판례를 들어 “의료진의 과실로 태아가 숨졌다고 해서 임신부 신체의 일부를 훼손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무죄 취지를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