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산너울 마을을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
32가구, 머리 맞대고 마음 맞춰 ‘따로 또 같이’
노 전 대통령도 생전 찾아 ‘노무현 꿈’ 모델로
노 전 대통령도 생전 찾아 ‘노무현 꿈’ 모델로
오래된 꿈이었다. 남편이 퇴직하니 더 이상 도시에 눌러앉아 지낼 이유가 없었다. 60줄로 달려가는 마당에 평생의 안식처를 찾아야 했다. 김신혜(53)씨 부부가 가진 재산은 인천의 작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 시골 여러 곳을 돌아봤지만, 도저히 가격이 맞지 않았다. 자그마한 텃밭이 딸린 소박한 시골집을 짓고 싶었지만, 그 꿈은 한참 멀어보였다. 마음이 아려왔다.
“우리 같은 처지에 어디서 이런 집 구할 수 있겠어요”
2008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천군 등고리의 산기슭을 찾았다. 준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산너울 마을이었다. 재임 중이던 2006년에는 전원마을 페스티벌에 참석해,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한 산너울의 구상을 관심있게 들었던 적도 있었다. 32가구가 모두 입주한 지금, 산너울은 대한민국 최초의 생태 귀촌마을로 불린다. 멋진 생태마을을 고향 땅에 만들겠다던 ‘노무현의 꿈’은 미완성이지만, 그가 모델로 삼았던 산너울에는 행복한 공동체가 영글어가고 있다.
“그저 좋아요. 꿈만 같지요.” 김신혜씨 부부는 방 3개에 큰 다락이 있는 200평 부지의 전원주택을 장만했다. 태양열과 3중 유리창으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황토로 벽을 세워 평당 건축비가 350만~400만원이 들어간 고급 생태 주택이다. 공동 경작할 수 있는 논밭도 100평이나 된다. “벌어 놓은 돈도 없는데, 우리 같은 처지에 어디에서 이런 집을 구할 수 있겠어요.”
사회적기업 ‘이장’(www.e-jang.net)에 근무하는 직원과 이웃에 살았던 것이 행운이었다. 그로부터 농림부의 전원마을 사업 지원을 받아 싼값의 생태 마을을 조성한다는 정보를 들은 것이다. 서천 행을 결심한 김씨 부부는 아파트 판 돈 1억7천만원으로 분양대금을 내고, 1년 동안 서울 방화동에서 월세를 살다가 올해 초 산너울에 입주했다.
김씨 부부의 경제적 여건도 오히려 서울보다 나아졌다. 남편 고금석(60)씨는 오후 3~4시면 타우너 차량을 몰고 읍내로 나가 타코야키라는 일본과자를 구워 판다. 날마다 2㎏ 정도 판매로 1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김씨는 재택근무로 출판교정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3일은 하루 3~5만원인 희망근로를 나간다. “수입은 많다 할 수는 없지만, 지출이 훨씬 적잖아요. 연금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동네 아이들 모두 자기 아이처럼 서로 챙겨 ”
박영주(39)씨는 동갑내기 남편 조태진씨를 서울에 두고 먼저 서천으로 내려왔다. 2살, 4살, 6살 아이 셋은 하루종일 동네에서 뛰어다니면서 논다. “남편이 옆에 없다는 것 말고는 다 좋아요. 육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개인 시간도 많아졌어요.”
교직에서 일하는 남편도 내년에는 1년 육아휴직을 내고 산너울에 와 함께 지낼 예정이다. 그 사이에 지역 사립학교 자리를 물색해 보고, 여의치 않다면 퇴직할 것도 생각하고 있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요. 생활규모를 줄이면 어느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군청 일자리도 알아보고 있는데, 연말께 쯤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셋째 아이 유치원 보내고 난 뒤에는 산너울 마을에 지역아동센터를 열 생각도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동네 아이들을 모두 자기 아이처럼 대한다는 거예요. 서울의 공동육아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죠. 동네 아이들이 모두 9명인데, 서로 돌아가면서 챙기고 간식도 먹입니다. 모두가 한 가족이예요.”
산너울 마을은 언론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에너지 덜 쓰고 황토 같은 친환경 소재로 지어진 생태 마을이라는 점이 주로 부각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특징은 주민들이 서로 나누고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점이다. 주민들은 분양 단계부터 매달 한차례씩 모여, 각자의 집 배치를 정하고 함께 마음을 맞추는 모임을 해왔다. 주민들의 입에서 선뜻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노력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이장’은 경남 하동과 전남 순천에 제2, 제3의 산너울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또 한겨레신문사와 함께 지역경제디자인센터를 세워 생태농장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8월5일부터 2박3일 동안 문을 여는 제3기 생태농장학교는 ‘산너울 귀촌’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8월22일부터 11월14일까지 100시간 운영되는 즐거운 귀촌학교 프로그램과 농산어촌 지역의 사회적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40시간의 지역살림 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 과정(8월22일~10월10일)도 있다. 문의 : 02-888-4368, www.localeco.org
김현대 한겨레지역경제디자인센터 소장 koala5@hani.co.kr
산너울 마을 주민 김신혜씨.
김씨 부부의 경제적 여건도 오히려 서울보다 나아졌다. 남편 고금석(60)씨는 오후 3~4시면 타우너 차량을 몰고 읍내로 나가 타코야키라는 일본과자를 구워 판다. 날마다 2㎏ 정도 판매로 1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김씨는 재택근무로 출판교정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3일은 하루 3~5만원인 희망근로를 나간다. “수입은 많다 할 수는 없지만, 지출이 훨씬 적잖아요. 연금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동네 아이들 모두 자기 아이처럼 서로 챙겨 ”
산너울 마을 주민 박영주씨.
산너울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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