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문화방송> 사장(맨 앞)을 비롯한 경영진이 19일 오전 문화방송 경영 현황 보고를 위해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6층 방송문화진흥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사회서 경영진·프로그램 개편 질의 쏟아내
노조 “점령군의 칼부림 시작됐다” 강력 반발
노조 “점령군의 칼부림 시작됐다” 강력 반발
새로 구성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문화방송>(MBC) 흔들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방문진은 19일 정기이사회에 앞서 문화방송 경영진에게 질의서를 보내 경영진 교체와 노조 와해 및 ‘문제 프로그램’ 개편 시도로 읽힐 수 있는 ‘의도성 짙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문화방송 노조는 “점령군의 칼부림이 시작됐다”며 반발했다.
방문진 이사들은 19일 이틀 일정으로 개최된 정기이사회에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문화방송 임원들을 출석시켜 부문별 현황보고를 들었다. 이사들은 최근 문화방송 수익 하락 이유와 뉴미디어 시대 대비책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방문진 새 이사들이 엠비시를 정권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려 한다’는 우려는 방문진이 지난 주말 경영진에 보낸 질의서를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사회는 질의서에서 올 상반기 394억원 적자 등 경영 부실을 추궁하며 엄기영 사장을 겨냥한 공격적 질문을 퍼부었다. 질의서는 새 방문진 구성 후 엄 사장이 사내 전자우편으로 사원들에게 밝힌 “어느 정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가겠다”는 발언을 놓고 “그동안 어느 정파와 세력에게 흔들렸다고 자평하느냐”고 따졌다. 질의서는 또 ‘피디수첩’을 ‘왜곡보도’로 규정하고 거액의 소송이 제기될 경우 제작진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인지 물었다. 프로그램 논란을 빌미로 경영진 교체를 밀어붙일 수 있음도 시사했다.
프로그램 개입과 노조 영향력 약화를 의도하는 듯한 질문도 대거 포함됐다. 이사회는 쌍용차 파업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이 파업 노동자에게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며 제작자율권 침해성 질문을 하는가 하면, 노조의 경영권·인사권·편집권 침해 사례를 밝히라며 노조를 향한 반감을 드러냈다.
문화방송 노조는 이날 오전 특보를 내고 “노조 활동을 막아버리고, 프로그램에 일일이 간섭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임자를 잘라버리겠다는 방문진의 엠비시 점령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노조원 20여명은 이사회 장소(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악의적 질문 의도를 밝히라”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반면 김 이사장은 19일 이사회가 열리기 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엠비시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고 엠비시가 여러 가지로 흔들리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자는 차원에서 이사들이 (질의서에 포함된) 질문을 했을 것”이라며 “(피디수첩 등) 프로그램 존폐나 시간 이동은 경영진 몫이지만, 데스크를 제대로 못 보는 구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제작진의 문제는 (이사들이) 얘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문영 박창섭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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