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청광장 분향소에 조문을 마친 시민들이 21일 낮 시청광장 방명록 작성 안내소에서 추모의 글을 작성하며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를 받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경 치달은 정부에 경고, 고통받는 사람엔 연민
햇볕정책 자부심…북 핵실험엔 “절대 용납안돼”
햇볕정책 자부심…북 핵실험엔 “절대 용납안돼”
동교동 자택 정원엔 진달래가 만발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아픔과 역사의 태엽을 거꾸로 감는 정권에 대한 분노가 넘치고 있었다. 21일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는, 현미경으로 일상을 대하고 망원경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끝까지 세상과 호흡한 한 인간의 기록이다.
새해 벽두부터 그는 현 시국을 바라보며, 독재의 불길한 망령을 떠올렸다. “모든 독재자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1월16일)며 독재자의 말로를 경고하고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다섯달 뒤인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돌 기념 특별연설에서 입 밖으로 표현된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현 정권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려면 (국민들이) 정의롭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며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는 것은 용서 안 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대목에선 분노가 정점에 이르렀다. 이는 곧 행동으로 나타났다. 공개 석상에서도 주저없이 이명박 정부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 전 대통령은 6월25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울면서 작금의 상황을 개탄했다. “모두가 어떤 형태든 자기 위치에서 행동해서 악에 저항하면 이긴다”, “때리면 맞고 잡아가면 끌려가라”,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하라”, “하루도 쉬지 말고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를 위해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한 측근은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소명감을 느꼈던 것 같다”며 “그러다가 기운을 너무 많이 소진해 하루아침에 건강이 무너져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필생의 과업이었던 한반도 평화 문제는 구체적 일상의 모습으로 그의 삶에 스며 있었다. 2월과 3월 각각 한국을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특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자 이를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표명”(2월20일, 3월10일)으로 해석했다. 북한이 지난 4월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것을 놓고 “예상했던 일”이라며 “6자회담을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라고 전망했다. 5월18일 서울을 찾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통 크게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정신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면 북핵 문제는 해결된다”고 말했던 김 전 대통령은 일주일 뒤인 5월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벌이자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5월25일)고 적었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자신에 대한 긍지도 읽을 수 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1월6일), “살아있는 것이 행복”(5월2일)이라는 문장은 한평생 삶의 에너지를 ‘완전연소’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을 듯하다.
그렇기에 그는 어스름 저무는 인생의 황혼 속에서도 행복을 봤다. 수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에게 여전히 ‘인생은 아름다웠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웠으나 ‘역사는 발전한다’는 희망을 꺾지 않았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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