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롄의 한 한국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한국 동시를 배우고 있다. 이 유치원에선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난 아이들 4명이 한국말을 배운다. 다롄/유강문 특파원.
대다수 아이들 중국말·문화에 더 익숙
부모들은 한글교육 부담될까 전전긍긍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니게 될까 걱정”
부모들은 한글교육 부담될까 전전긍긍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니게 될까 걱정”
중국서 자라는 한·중 국제결혼 2세들
“난 한국인이에요. 하지만 한국보다 중국이 더 좋아요.”
정현(5)이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한국말로 자기를 소개한다. 발음이 또렷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다. 중국 다롄에서 한국어 유치원에 다니는 정현이의 한국말 실력은 나이보다 두어 살 어린 세살배기 수준이다. 낱말을 열 개 이상 섞어 쓰지 못한다. 중국말로 물으니 오히려 분명하게 문장을 만들어 답한다.
정현이는 한국인 아빠와 중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빠의 국적을 따라 엄연한 한국인이다. 하지만 맨 처음 배운 언어는 한국말이 아니라 중국말이다. 아빠가 다롄에서 테이프 공장을 운영하는 동안 창춘 근처의 외가에서 태어나 한동안 살았다. 거기서 중국인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
정현이는 한국어 유치원에 다니는 게 싫다. 아빠가 넌 한국인이니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다니긴 하지만,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다. 선생님 설명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다 하는 구구단도 익숙하지 않다. 한글로 이름을 쓰면 자음과 모음이 따로 논다.
그러나 집에 가면 생기가 돈다. 집에선 온통 중국어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물론, 아빠도 집에선 중국어를 쓴다. 유치원에선 아이들한테 기죽고, 선생님한테 눈치가 보이지만 집에만 가면 ‘왕자’가 따로 없다. 요즘 정현이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중국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요즘 중국 대도시에선 한국말을 못하는 한국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롄의 이 유치원에는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4명이나 된다. 부모의 한쪽이 한국인이고 국적도 한국이지만, 대부분 한국말이 서툴다. 중국인 엄마나 아빠가 조선족 동포가 아니어서 한국말을 못하는 탓에 집에선 주로 중국말을 쓰기 때문이다. 한국인 엄마나 아빠도 중국 생활에 녹아들어 중국어로 대화하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한국말에서 더욱 멀어진다. 한국식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중국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중국식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더 많다. 아이 둘을 중국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보내는 김아무개(39)씨는 “아이들이 중국에서 났으니 중국인으로 크는 게 옳지 않으냐”고 되묻는다. 그는 한국말은 아이들이 커서 관심을 보이면 한국에 어학연수를 보내 배우게 할 생각이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국적상 한국인일 뿐이다. 베이징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경미(12)는 친구들과 중국말로 수다를 떨고, 중국 가수가 부른 노래를 따라 부른다. 한국말 공부는 한국인 엄마의 성화 때문에 1학년 때 일주일에 한 번 한글학교를 간 게 전부다. 한국어로 된 동화책도 읽지 못하고, 간단한 문장도 쓰지 못한다. 단군왕검이나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란 이름은 들어본 것은 같은데, 누군진 모른다. 경미의 소망은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변호사인 중국인 아빠는 경미가 베이징의 일류 중학교를 거쳐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걸 따르자니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영어나 수학 학원을 도느라 바쁘다. 최근엔 논술과 작문까지 과외를 받는다. 엄마는 그렇게 허덕대는 경미를 보면서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는 한국인 부모는 혼란에 빠진다. 저러다간 한국말을 아예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아이를 과연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중국에 내린 뿌리가 깊다. 중국에서 잘만 키우면 한국인으로 자라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자칫하면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교차한다. 다롄에 사는 김아무개(44)씨는 중국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두 아이를 한국어 유치원에 보낸다. 중국말로 입을 뗀 아이들이 한국말을 배우려 낑낑대는 것을 보면 괜한 짐을 지운 듯해 미안하다. 그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국인이 아니겠느냐”면서도 “내 선택이 아이들이 중국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베이징 다롄/유강문 박민희 특파원 moon@hani.co.kr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국적상 한국인일 뿐이다. 베이징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경미(12)는 친구들과 중국말로 수다를 떨고, 중국 가수가 부른 노래를 따라 부른다. 한국말 공부는 한국인 엄마의 성화 때문에 1학년 때 일주일에 한 번 한글학교를 간 게 전부다. 한국어로 된 동화책도 읽지 못하고, 간단한 문장도 쓰지 못한다. 단군왕검이나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란 이름은 들어본 것은 같은데, 누군진 모른다. 경미의 소망은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변호사인 중국인 아빠는 경미가 베이징의 일류 중학교를 거쳐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걸 따르자니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영어나 수학 학원을 도느라 바쁘다. 최근엔 논술과 작문까지 과외를 받는다. 엄마는 그렇게 허덕대는 경미를 보면서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는 한국인 부모는 혼란에 빠진다. 저러다간 한국말을 아예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아이를 과연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중국에 내린 뿌리가 깊다. 중국에서 잘만 키우면 한국인으로 자라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자칫하면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교차한다. 다롄에 사는 김아무개(44)씨는 중국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두 아이를 한국어 유치원에 보낸다. 중국말로 입을 뗀 아이들이 한국말을 배우려 낑낑대는 것을 보면 괜한 짐을 지운 듯해 미안하다. 그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국인이 아니겠느냐”면서도 “내 선택이 아이들이 중국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베이징 다롄/유강문 박민희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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