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명만 기재’ 유무죄 판단 못해
구체적인 범죄 사실은 없고 죄명만 있는 공소장을 두고 1·2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며 형사소송법을 엄격히 적용한 결론을 냈다.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재건축 공사장 출입구를 막고 시위를 벌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47)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건축 상가 철거대책위원장인 이씨는 지난해 4월 사전에 집회 신고를 한 뒤 20여명의 세입자들과 함께 공사장 출입구 앞에서 상가 입점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들이 트럭 출입을 막는 등 업무를 방해했다며 해산을 명령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이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이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하면서 “지체 없이 해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시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1·2심 재판부는 업무방해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집시법 위반 혐의를 두고는 “검찰의 공소장만으로는 이 집회가 어떤 이유로 불법 집회가 되고 해산명령이 내려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집회나 시위의 양상은 매우 다양한데, 검찰의 공소사실만으로는 어느 것에 해당되는지 쉽사리 알 수 없다”며 1·2심과 비슷한 판단을 하면서도 “원심이 검찰의 이런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됐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은 심판대상을 한정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소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도록 돼 있다”며, 이런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채 기소가 이뤄졌는데도 유·무죄를 판단한 하급심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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