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축소는 진보성향 직원들 내몰려는 속셈”
“차기 총장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차기 총장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김칠준 인권위원회 전 사무총장 인터뷰 “촛불집회 이후 인권위에 가해진 ‘보복’과 국가기관들의 비협조로 용산 참사 등 중요 인권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인권위는 그동안 침묵을 강요당했어요.” 지난달 28일 퇴임한 김칠준(49·변호사)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9일 <한겨레>와 만나, 인권위에 닥친 위기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2년7개월 동안 맡았던 사무총장직을 물러난 뒤, 이날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했다. 흔히, 인권위 사무총장은 인권위의 ‘조타수’로 비유된다. 인권위가 나아갈 항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권위원장은 대외적으로 인권위를 대표하는 ‘선장’이지만, 사무총장은 촛불집회와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등 중요 인권 현안을 위원회에 상정해 결론을 끌어내는 구실을 맡는다. 사무총장이 눈을 감는다면, 인권위 결정은 나오지 않는다. 김 전 사무총장은 먼저, 정부와 인권위 사이에서 ‘독립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갈등을 지적했다. 정권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시작돼 아슬아슬하게 긴장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5월 촛불집회로 폭발했다. 그는 “경찰의 촛불집회 대응 과정에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인권위 결정 이후 국가기관의 노골적인 인권위 무시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정권의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였기 때문에 인권위도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경찰 스스로가 정한 규정에 비춰 봐도 경찰의 집회 관리에는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었어요. 인권위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를 세 번이나 열었고, 결정문 곳곳에 ‘경찰도 시민도 잘 대처했지만, 특정한 사안에는 적절치 않았다’는 문구를 넣어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촛불집회 관련 인권위 결정이 나오자마자, 엄청난 정치적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인권위가 강하게 반발했는데도 조직 축소안을 밀어붙였다. 김 전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이는 인권위 내 진보적 성향의 직원들을 몰아내려는 노림수”라고 말했다.
이후 인권위는 용산 참사 등 큼직한 인권 현안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 김 전 사무총장은 “경찰은 사고가 터진 지 8개월이 지났는데도 이례적으로 인권위의 정보공개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그에 따라 인권위도 경찰의 인권침해 여부를 가리는 결정문을 지금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경찰의 자료협조 거부는 인권위법 위반”이라며 사상 최초로 경찰을 상대로 한 ‘과태료 부과’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달 31일 용산 참사 희생자 주검이 모셔진 서울 용산 순천향대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그는 “용산 참사를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어느 국가기관도 풀지 못한 문제입니다. 인권위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인권위는 사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다.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현병철 신임 인권위원장이 취임한 뒤 쌍용차 사태가 터지자 인권위는 위원장 성명 1건과 “물과 의약품 반입. 강제진압 자제” 등을 요구하는 긴급구제 조처 2건을 내렸다. 이 정도 움직임에도, 보수언론을 일제히 “인권위원장을 잘못 뽑았다”고 질타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앞으로도 인권위는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큰 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에는 진보도 보수도, 좌도 우도 없습니다. 침묵하는 인권위는 필요 없습니다. 현 위원장님과 새로 오실 사무총장님께서도 그 점만은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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