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필적감정과 모순 증거 발견…유죄 유지할 수 없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진실이 다시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법원은 16일 이 사건에 재심 개시 결정을 하며 사실상 무죄 판단을 내비쳐, 17년 전 강씨에게 내려졌던 유죄 판결이 바뀔 것인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강원)는 16일 ‘고 김기설(당시 25) 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수사와 재판 결과는 잘못됐다’며 강씨가 낸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사건을 다시 심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에 근거해 업무일지, 전민련 수첩, 메모지를 강씨가 작성한 것으로 본 판결은 새로 발견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등 새로운 증거들과 모순돼 (과거의 유죄 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며 “새로운 증거들은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재심 개시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강씨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 근거가 됐던 필적 감정 결과와 관련해 “분신한 김기설씨의 유서가 김씨의 필적과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감정기관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며 “유죄의 확정판결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는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당시 19)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것에 항의해 김씨가 분신한 뒤,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사건 초기부터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과 법원은 ‘유서의 필적은 숨진 김씨가 아닌 강씨의 것’이라는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를 근거로 강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 뒤로도 논란이 끊이지 않던 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07년 11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고 결론 냈다. 진실화해위는 “김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새로 발견해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결과, 유서의 필적은 김씨 본인의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며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고, 강씨는 이듬해 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노현웅 길윤형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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