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쪽의 노순호(오른쪽)씨가 지난 1987년 납북된 어선 ‘동진호’ 선원인 동생 성호씨를 22년 만에 만나 울부짖고 있다. 동진호는 지난 1987년 1월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노성호씨 “북에서 장가 가고 대학도 나왔다”
누나 순호씨 “예전 그대로네” 얼굴 쓰다듬어
누나 순호씨 “예전 그대로네” 얼굴 쓰다듬어
27일 이틀째를 보낸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선 1987년 1월 납북된 동진27호 선원 노성호(48)씨와 진영호(49)씨도 남쪽 가족과 뜨겁게 얼싸안았다.
노성호씨는 26일 단체상봉에서 남쪽 누나 순호(50)씨와 22년 만에 만났다. 그는 “여기 와서 장가도 가고 대학도 나오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면서도 “한 시도 고향 생각, 누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누나는 “옛날 모습 그대로네”라며 동생의 얼굴을 자꾸 쓰다듬었다.
진영호씨도 부인, 딸과 함께 나와 남쪽 누나 곡순(56)씨를 만났다. 누나는 처음 만난 북쪽의 올케 안금순씨에게 “영호가 어렸을 때 노래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많은 이들이 좋아했다”며 “(영호를) 외롭지 않게 잘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곡순씨는 진씨와의 만남을 위해 2000년 8·15 상봉 때부터 지금껏 한 번도 빠짐없이 상봉 신청을 해왔으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북쪽 응원단에 동생과의 만남을 호소하기도 했다.
납북 동진호 선원 12명 가운데 지금까지 노씨와 진씨를 더해 6명이 5차례에 걸쳐 남쪽 가족과 재회했다. 그러나 선장 김순근씨 등 6명은 생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최연소 선원이었던 임국재(1954년생)씨가 2003~2005년 세 차례 탈북을 시도했다가 보위부에 발각돼 교화소에 수감된 뒤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진호는 87년 1월15일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 북쪽 경비정에 납북됐다. 지난해 12월 현재 미귀환 납북자와 생존 국군포로는 각각 494명(어부 440명)과 5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손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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