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운전자가 입증어려워”…기존 판례 뒤집어
‘주행중’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해 차량 판매업체가 사고 원인을 입증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시동 직후’ 급발진 사고에 대해서는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례가 있어 앞으로 소송 결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송인권 판사는 30일 조아무개(62)씨가 벤츠 승용차를 수입·판매하는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조씨에게 동일한 벤츠 승용차를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기술집약 제품은 일반 소비자가 제품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제조업자 쪽에서 제품 결함이 아닌 다른 사고 발생 원인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제품 결함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사고는 주행중에 발생한 것으로, 시동을 건 직후에 견줘 운전자의 과실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벤츠 승용차를 구입한 조씨는 8일 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려고 우회전을 하던 중 갑자기 차량이 굉음을 내며 30m를 고속으로 질주해 벽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차량 엔진이 파손되자 동일한 차량을 다시 인도해 달라며 판매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송 판사는 “복잡한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 소비자가 통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했음을 입증하면 나머지는 제조사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 맞다는 것으로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한 판결”이라고 자평했다.
앞서 대법원은 2004년 “자동차 공학상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급발진이 일어나기는 어렵다”며 자동차 제작상의 결함으로 보기보다는 운전자의 실수에 무게를 두는 판단을 한 바 있다. 한국소비자원에는 해마다 100여건 이상의 급발진 사고분쟁이 접수되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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