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범인여부 확인 안한채 사진 퍼날라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아무개(59·무직)씨는 한가위를 앞둔 지난 1일 오후 선산이 있는 강화도에 벌초하러 갔다가 지인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얘기인즉 김씨가 성폭행범으로 지목돼 인터넷 여기저기에 사진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알아보니,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사진을 일부 누리꾼들이 “바로 나영이 성폭행범의 얼굴”이라며 퍼다 나르고 있었다.
나영이 사건의 범인인 조두순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일부 누리꾼들이 지난달 29일부터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범인의 이름·주소 등을 퍼뜨리는 과정에서 김씨의 사진이 도용된 것이다. 사진 아래엔 ‘전과 17범’, ‘미성년자 성폭행범’이라는 설명까지 붙은 채였다.
김씨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론 보도 과정에서 김씨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다른 사진들도 추가로 노출됐다. 김씨는 1일 저녁 한 언론사의 요청으로 ‘누리꾼들이 생사람을 잡았다’는 취지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인터넷에 뜬 기사에는 앞서 유포된 사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장의 사진이 함께 있는 김씨의 블로그 화면까지 갈무리돼 실렸다.
큰 충격을 받은 김씨는 서울 양천경찰서에 법률 상담을 했다.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김씨는 이번 범죄와 아무 상관없는 평범한 시민으로, 인터넷을 하는 주위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전화를 했을 정도로 생활에 큰 불편을 겪게 됐다”며 “언론 보도에서 모자이크 처리되긴 했지만 식별 가능한 블로그 사진까지 실린 데 충격을 받아 외부와 접촉 자체를 꺼리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김씨는 5일 자신의 사진을 퍼다 나른 누리꾼 100여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며, 양천경찰서는 인터넷 등에서 확보한 증거물을 바탕으로 사진의 유포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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