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호 국세청장
취임 100일 맞은 백용호 국세청장
정보 정치적 이용 탓 권력기구화
인사청탁 당사자는 승진 배제
정보 정치적 이용 탓 권력기구화
인사청탁 당사자는 승진 배제
“국세청의 변화를 위해 중요한 직원들의 신뢰와 공감대를 얻은 게 가장 큰 의미가 있겠지요.” 23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백용호 국세청장은 그간의 성과를 자평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가 취임하던 당시 국세청은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전임 청장들의 잇단 불명예 퇴진 속에서 청장 공백이 5개월 이상 지속됐다. 이런 최악의 여건 속에서 “지금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지휘봉을 잡은 백 청장은 지난 100일 동안 한 손으로는 사기가 땅에 떨어진 직원들을 추스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내부의 고질병들을 수술하기 위한 쇄신작업을 벌였다. 국세청장이 언론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손사래 치는 백 청장을 취임 100일 인사를 핑계로 지난 19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백 청장의 취임 일성은 국세청이 권력기관이 아닌 본연의 세정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백 청장이 안에서 바라본 국세청 권력기구화의 원초적 힘은 무엇일까? 그는 “국세청이 축적한 기업과 개인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공정하고 투명한 세무조사를 위해 대기업 조사의 4년 주기 순환실시, 조사 대상 선정기준 공개, 납세자보호관 신설 등의 쇄신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 같은 외부의 청탁은 사라졌을까? 백 청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렇게 말했는데도 청탁이 들어오더라”며 “인간관계 때문에 면전에서 바로 거절하는 대신 청탁을 넣은 기업이나 개인을 따로 불러 경고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뜻은 과연 어떤지 의문이 들었다.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서는 최고권력자의 뜻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 청장은 “공정위원장 때도 조사와 관련해서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며 “국세청장 때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또다른 과제인 인사의 공정성 확립을 위해 민간위원들이 주축이 된 국세행정위원회 설치, 국장급 민간전문가 영입, 인사기준 공개 등의 쇄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세상에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드문 법이다. 백 청장은 “인사를 앞두고 외부 청탁이 들어왔더라”며 “경위조사를 시키고, 당사자에게 승진 배제의 불이익을 주도록 했다”고 털어놓는다. 추석 직후 이 사실이 내부 전산망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세청은 발칵 뒤집혔다. 한 국장은 “인사기준을 밝힌 것도 처음이지만, 직원의 인사청탁과 불이익 처분까지 공개됐으니 어떠했겠느냐”고 말했다. 백 청장은 최근 이뤄진 서기관급 인사에서도 지방청장에게 인사권을 맡기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지방청장에게 인사권을 100% 위임하는 대신 인사 잡음이 있으면 엄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백 청장은 부임 초기 국세청 직원들에게는 일종의 점령군으로 비쳤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백 청장은 지난 100일 동안 2만여 국세청 직원들의 마음을 얻어 조직을 추스르고, 쇄신 방향을 제시하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대통령과 청장이 바뀌어도 국세청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청장 임기제 도입 같은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