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60년사’ 발간 시기 1년 가까이 지지부진
일부 “자학사관” 반발에 사건나열 그칠 우려
일부 “자학사관” 반발에 사건나열 그칠 우려
사법부에 때아닌 ‘자학 사관’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시국사건 재판에 대한 평가를 담게 될 <법원 60년사>를 두고서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사법 60돌을 맞아 <역사 속의 우리 사법부>(가칭)를 그해 말까지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당시 기념사에서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면서 “권위주의 시대의 각종 시국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법원 60년사에 포함시키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1948년 이후 역사를 객관적·중립적으로 조망한다”는 서술 방침도 세웠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나도록 발간 작업은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25일 “올해 안 발간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지는 데는 내용에 신중을 기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신중’한 작업이 이뤄지는 부분은 주로 1970~80년대 시국사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지만, 사법부 굴욕사의 정점을 이루는 시기다. 한 실무 관계자는 “초고는 지난 2월 말에 작성됐지만, 여러 사람이 나눠 쓰다 보니 어떤 사건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할애되는가 하면 논란이 됐던 사건들이 아예 빠지기도 해 전체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며 “개개인의 주관적 역사관이 들어갔거나 중복된 내용을 고르게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일부 구성원들이 ‘60년사 내용이 지나친 자학 사관을 담고 있다’며 반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일부 내용이 사법부 역사를 너무 낮게 평가한다는, 자학 사관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장으로 60년사 발간을 총괄했던 김용담 전 대법관은 지난 9월 퇴임에 맞춰 낸 자서전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모두 떠난 시점”이라며 “잘못에 대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법 침해일 뿐이지 과거사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기류에 따라, 문제가 되는 재판의 적극적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 사건의 재심을 진행 중이거나 맡게 될 재판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원칙적 고려’도 있지만, 이런 재판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들이 현직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결국 6년 임기 중 2년여를 남겨 놓은 이 대법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다짐한 과거사 반성 작업이 갈수록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보수 정권의 등장이 이 대법원장의 ‘갈지자걸음’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책자가 나오면 한쪽에선 (과거사 반성의) 강도가 약하다, 다른 한쪽에선 지나치게 세다며 시끄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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