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48)씨
‘공권유술 7단’ 이승호씨 “교통사고로 얻은 것도 많아”
1998년 겨울 어느날 저녁, 이승호(48·사진)씨의 삶은 달라졌다. 남산 하이야트호텔 앞을 지나던 이씨의 자가용을 맞은 편 차가 덮친 것이다. 1년 동안의 병원 생활 동안 평소 운동을 즐기던 100㎏의 건장한 몸은 70㎏의 체격으로 변했고, 생계를 유지시켜준 호프집도 문을 닫게 됐다. 경추와 무릎을 수술하고 병원을 나온 뒤 그에게 남은 것은 장애3급 판정과, 마비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과 오른발이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시간 되면 밥먹고, 어두워지면 자고….” 이씨는 퇴원 뒤 1년 동안의 생활을 “폐인이었어요. 원래 성격이 거친 편인데, 주변 사람들한테 신경질로 시비만 걸었죠. 몸도 마음도 망가졌어요.”라고 기억했다.
2001년 봄, 그의 삶은 또 한 번 달라졌다. 지팡이를 짚고 자신이 사는 동네인 신당동을 정처없이 거닐던 이씨의 눈에 창작무예인 ‘공권유술’이 들어왔다. 눕거나 앉아서 동작을 할 수 있는 공권유술 도장의 연습 광경을 본 이씨는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에 무턱대고 관장이었던 강준(40) 대한공권유술협회 회장을 졸랐다. 몇 번씩 찾아와 도장 문앞에서 기다리는 이씨의 정성에 강 회장도 마음을 열었다.
물론 이씨의 몸상태로 무술은 쉽지 않았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과 통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만 냈다. “젊은 친구들은 나를 피했죠. 아내는 운동한다는 소리에 미쳤다고 하대요.” 하지만 매일 매일 수련에만 전념하던 이씨의 몸과 마음은 차차 변했다. 3년 정도 지나자 예전 체중도 회복하고 근력도 생기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버리고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게 됐다. ‘독불장군’ 같던 이씨의 성격도 도장 동료들과 어울리며 순해졌다. “군대 갔다 돌아온 젊은 친구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새사람이 된 셈이죠.”
2009년 가을, 이씨는 공권유술 7단으로 도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친다. 6년 전부터 중국과의 무역업도 하게 됐다. 30~31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열리는 용오름 전통무예축제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게 된다. 이씨는 직접 기본자세를 취하며 공권유술의 매력으로 “전신운동으로 나이에 상관 없고, 1년 이상 꾸준히 수련하면 몸도 좋아지고 자기방어도 된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약을 달고 살고, 통증도 있다”면서도 “교통사고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며 밝게 웃었다.
글·사진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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