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정렬
32년전 군의문사 진실 밝혀져
가해자 만나 “나와줘 고맙다”
가해자 만나 “나와줘 고맙다”
32년 전 일이다. 1977년 10월2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자취방. 시험을 앞두고 공부에 열중하던 김정렬(48·당시 16·사진)씨의 귀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10살 위의 큰형 성환(당시 26·상병)씨가 찾아온 것이다. 김씨는 1981년 <문화방송> ‘코미디언 공채 1기’로 데뷔해 여러 유행어를 낳았다. 당시 경기 북부의 한 부대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던 형은 고향인 충남 청양에서 서울로 ‘유학’ 온 동생을 무척 아꼈다. “선임병이 외박을 나가는 틈에 몰래 나왔기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밤새도록 얘기하다 보니 동이 트는 줄도 몰랐어요.” 형은 아침 6시께 집 앞 골목길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부대를 향해 서둘러 떠났다. 다음날 저녁 자취방에 난데없이 군 지프차가 찾아왔다. 군인들이 내려 “형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으니 고향 주소를 달라”고 하더니, 쌀 한 가마니를 놓고 갔다. 얼마 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형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군에서 어머니한테 ‘빨리 화장하면 국립묘지에 묻어주고 연금도 받게 해 주겠다’고 해, 부검 없이 화장을 결정했다고 하대요. 그런데 나중에 서류를 보니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처럼 처리가 됐어요.”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88)는 그예 ‘화병’을 얻었다. 김씨는 “어머니가 형의 시신을 봤는데 ‘농약 냄새는커녕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며 가슴을 치셨다”고 말했다. 김씨는 30여년이 지나, 2006년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 출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난달, 김씨는 “가해자가 진상을 밝혔으며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대로 복귀한 형은 선임병에게 무단이탈을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했고, 결국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진상’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김씨는 서울 중구에 있는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가해자를 직접 만났다. 중풍을 앓는 어머니는 그 자리에 함께 가지 못했다. “가해자는 ‘그동안 죄를 짓고 평생 짐을 지고 살았다’고 했고, 저희들은 ‘이렇게 나와준 것만도 고맙다’고 했어요. 형이 30년 만에 명예회복된 것만으로도 평생의 한이 풀린 것 같아요.”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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