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중앙정보부장 시절 7·4 남북 공동성명-김대중 납치 주도
한때 유신권력의 제2인자였던 이후락(사진)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 31일 사망했다. 향년 85.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은 “이 전 부장이 31일 오전 11시45분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1924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울산공립농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를 1기생으로 졸업한 뒤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 등을 지내다 5·16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맡았으며, 박정희 장군의 대통령 취임 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권부의 핵심 실세로 떠올랐다.
70년대 초부터 3년 남짓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그는 당시 박정희-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던 제7대 대통령 선거의 막후 공작을 지휘했고, 이어진 유신체제 구축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1972년 5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성명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1998년 공개된 미국의 비밀 외교문서에서는 그가 1973년 벌어진 ‘김대중 납치 사건’을 주도했다고 기록돼 있다.
1973년 12월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다’라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중앙정보부장에서 해임됐으며,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자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치 활동을 규제받았다. 신군부가 밝힌 그의 부정축재액은 194억원이었는데, 그는 당시 “떡을 주무르다 보면 떡고물이 묻는 것 아니냐”고 항변해, 우리 사회에 ‘떡고물’이란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려났지만 이후에도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개발독재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묻는 연구자나 언론의 요청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이며 빈소는 동서신의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지는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결정됐고, 발인은 11월2일 오전 8시30분이다. 02)440-8922.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