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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정부가 직접 ‘일제 전후보상’ 메시지 보내야”

등록 2009-11-09 22:41수정 2009-11-10 09:11

일본 정권 교체로 부쩍 바빠진 아리미쓰 겐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는 요즘 자전거를 타고 의사당에 가 입법 로비를 벌이는 것이 일과가 됐다.   도쿄/김효순 대기자
일본 정권 교체로 부쩍 바빠진 아리미쓰 겐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는 요즘 자전거를 타고 의사당에 가 입법 로비를 벌이는 것이 일과가 됐다. 도쿄/김효순 대기자
아리미쓰 겐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 인터뷰/ 김효순 대기자
지난 8월 말 치러진 총선을 통해 일본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대외정책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은 주일 미군기지 이전 문제나 대테러 전쟁 참가 방식 등에서 종래의 자민당 정권과는 다른 접근방법을 쓰고 있다.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 보상문제에서도 과연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20년 가까이 전후보상문제에 매달려온 아리미쓰 겐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를 지난 2일 도쿄에서 만나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공식석상서 얘기 꺼내야
일본도 구체적 답변 내놔

-최근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가 방일해서 하토야마 총리의 면담을 요청하며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지만, 새 정권이 어떤 구상을 갖고 대응을 하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민주당이 총선 때의 매니페스토에서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나 고령자 의료, 교육 등에 몰두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이것은 내년도 예산편성 문제와 직결된다. 또 하나는 각 부처에 걸쳐 있는 전후보상문제를 누가 책임지고 다뤄야 할지 아직 체제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괄하는 기관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우리는 간 나오토 부총리 산하에 구성되는 국가전략국에서 과거사나 전후보상문제를 일괄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전략국은 아직 출범하지도 않았다. 내년 1월에 소집되는 정기국회 초반에 관련 법안이 처리돼야 부장관·정무관 등 인적 진용이 갖춰지고 예산이 확보된다. 국가전략국의 역할과 권한을 어떻게 할지 민주당 안의 내부 논의가 진행중인데 주도권 다툼의 성격도 겹쳐 있어 아직 명확하지 않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전후보상이 크게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우선순위는 물론 아니지만 두 번째 대상에는 들어가 있다. 대상자가 모두 고령이니 빨리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내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국가전략국 출범해야
보상논의 등 구체화

-한국 정부는 하토야마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데?

“지난 10월 초순 서울에서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하토야마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는 중요한 생각이지만 국민 모두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시간을 달라고 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 당국에서 거론을 해야 한다. 지난달 말 방일한 얀 페터르 발케넨더 네덜란드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전쟁 피해자 문제를 얘기했고 아소 정권 때 왔던 네덜란드 외무장관도 위안부 문제를 제기했다. 공식석상에서 얘기를 해야 일본도 구체적 답변을 하게 된다. 군대위안부, 사할린 잔류, 비·시(B·C)급 전범 등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때 빠졌던 문제들은 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총리나 외무장관이 거론해야 한다. 최근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직원 연수 강연을 의뢰받아서 ‘기탄없이 직구를 던지라’고 얘기한 바 있다. 명성황후 장례식 모습을 담은 의궤를 돌려달라고 스님 등이 와서 운동을 벌이곤 하는데, 민간 차원의 활동도 의미가 있지만 외교 통로를 통해 분명하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당 당수가 총리를 맡았던 무라야마 내각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어정쩡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민주당 정권에서 이런 방식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없는가?

“하토야마 정권은 이전의 호소카와 정권이나 무라야마 정권에서 과거사 정리가 왜 실패했는지 교훈을 삼고 있다. 1993년 8월 호소카와 정권이 발족했을 때 <마이니치신문> 1면 머리기사로 ‘전후보상기금 1조엔 구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구상은 1주일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연립정권이 끝난 후 당시 관방 부장관이었던 하토야마가 그 구상이 자신의 제안이었다고 인정했다. 호소카와 정권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아무런 준비 없이 모여서 발족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관료의 저항에 밀렸다는 것이 하토야마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또한 무라야마 정권은 총리가 사회당 출신이기는 하지만, 자민당에 업혀서 만들어진 약체 정부다. 그와 달리 전후보상문제는 총선 때 민주당의 매니페스토는 아니지만 정책에 들어가 있다. 호소카와 내각 때는 1조엔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우리는 5조엔 계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5조엔을 어디서 확보하느냐의 문제가 나온다. 내년도 예산을 3월 말까지 통과시켜야 하는데 그런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윤곽이 나오지 않는다. 정권 내부에서 충분히 전략을 짜서 재무성과 협의를 거쳐 특별회계를 만든다는 계획이 마련되지 않으면 발표를 할 수가 없다. 여러 해에 걸쳐 집행될 사안이라 시작 단계에서도 최소한 5000억엔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내년의 경기회복 여부도 큰 걱정거리가 된다.”


지난 2월 말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벌어진 시베리아 억류자 자료전 개막식에서 아리미쓰 겐(앞줄 오른쪽 끝에서 셋째)이 한국과 일본인 옛 억류자들과 함께 테이프를 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지난 2월 말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벌어진 시베리아 억류자 자료전 개막식에서 아리미쓰 겐(앞줄 오른쪽 끝에서 셋째)이 한국과 일본인 옛 억류자들과 함께 테이프를 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무라야마 담화’ 넘는 담화
하토야마, 내년 8월 밝혀야

-일본 내 우익 보수단체의 저항 반발이 예상되는데 큰 우려는 없나?

“물론 있다. 니혼가이기(일본회의)라는 보수단체의 결집조직이 있다. 국기국가법 제정, 야스쿠니 대체시설 마련 반대 등 보수주의 입장에서 국민운동을 벌이는 조직이다. 총선 전에 이 단체에 가입한 의원은 183명이었다. 민주당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민당 의원들이었다. 지금은 가입 의원이 86명으로 크게 줄었다. 총선을 통해 저항세력이 도태된 셈이다. 민주당은 이제 중의원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후보상과 함께 부부 성 따로 쓰기, 지방 참정권 등 개혁과제는 사전에 한다고 목청을 높일 것이 아니라 태세가 갖춰졌을 때 순식간에 해치우는 식이 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대거 당선된 민주당 신인 의원들은 과거사에 대해 이해가 있는가?

“약한 편이다. 문제의식이 투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초선 의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도 물론 하지만 그동안 민주당에서 과거사 문제에 매달려온 의원들이 교육시켜야 한다. 그것도 좀더 시간이 걸리는 요인의 하나이다.”

-전후보상에 대한 입법 조처에 들어간다면 순서는 어떻게 되나. 역시 일본인 시베리아 억류자 법안이 먼저인가?

“그럴 것이다. 다음에 비·시급 전범 법안, 한국인 등 외국인 시베리아 억류자 지원법안의 순서가 될 것으로 본다. 그다음에 위안부, 중국인 강제연행자 문제 등이 다뤄질 것이다.”

-조선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내년에 일왕(천황)의 방한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일왕이 명성황후 능에 참배해 역사적 화해를 이루자는 제안도 있던데?

“그것을 하려면 물밑에서 면밀히 준비를 해서 전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쪽의 제안으로 움직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천황이 1992년 방중했을 때 중국 정부는 모든 것을 통제했지만 한국은 자유로운 사회이니 통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나 궁내청이 결단하기는 어렵다.”

-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일본의 시민운동 진영에 구체적 움직임이 있나?

“몇 단체가 움직이고 있지만 큰 흐름이 되고 있지는 않다. 일반의 관심사는 북한의 핵이나 납치문제가 보상문제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그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좀 어려울 것이다. 북도 식민지 지배를 당했는데 거기를 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토야마 총리가 내년 8월 무라야마 담화를 넘어서는 담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라야마 담화 이후 지난 14년 동안 아무 진전이 없었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 아리미쓰 겐은 누구

199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보상운동에 매달려온 대표적 활동가다. 민주당 중진 의원을 포함해 정계에 발이 넓어 입법 로비활동에 강하다. 1951년생으로 와세다대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현재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 전후처리 입법을 요구하는 법률가 유식자 모임 간사, 시베리아억류자 지원센터 대표 등을 맡고 있다. 보상운동에 나서기 전에는 아시아인권기금 사무국장으로서 난민·소수민족 지원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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