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해임무효 소송 선고공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정연주 전 KBS사장 해임취소’ 판결 의미
보수단체·권력기관 동원한 해임 위법 확인
KBS이사회 무리한 결정 절차에도 경고장
보수단체·권력기관 동원한 해임 위법 확인
KBS이사회 무리한 결정 절차에도 경고장
법원의 12일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처분 취소 판결로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도 ‘유죄선고’를 받게 됐다. 현 정권 언론장악의 상징적 사건이 거꾸로 언론장악의 위법성을 증명해내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을 지상파방송 때문에 졌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현 정권에게 정 전 사장은 ‘방송장악’을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문턱이었다. 정 전 사장 해임은 ‘보수언론의 사퇴 여론 불지피기+보수단체의 사정기관 개입 길닦기+권력기관을 총동원한 정부의 해임 실행’이 톱니바퀴처럼 긴밀하게 맞물려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지난해 5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한국방송을 상대로 부실경영과 편파방송을 이유로 감사원에 감사청구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정 전 사장 퇴진을 종용하며 여론전을 펼치던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보수언론은 ‘물갈이’해야 할 대표적 전 정권 인사로 정 전 사장을 꼽기 시작했고, 특히 검찰의 배임혐의 기소 전후부턴 배임을 기정사실화하며 노골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6일 만에 특별감사에 들어갔고, 3달 만에 해임을 권고했다. 6월엔 국세청이 한국방송 외주제작사 7곳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돌입했고, 8월 검찰은 한국방송 전 직원의 고발을 매개로 정 전 사장의 배임혐의 수사를 시작했다.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국세청 세무조사로 제기된 ‘부실경영’ ‘배임의혹’ ‘인사전횡’ ‘편파방송’ 논란은 이사회가 정 전 사장 해임을 밀어붙이는 핵심 근거가 됐다. 정 전 사장 해임을 반대하며 한국방송 이사회와 충돌했던 ‘케이비에스 사원행동’ 관계자는 “감사원이 보수단체 감사청구를 기다렸다는 듯 특별감사에 나서고, 감사원의 해임권고 사유를 이사회가 받아들여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킨 것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할 공영방송 이사회가 노골적으로 정권과 코드를 맞춘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법적 판단을 거칠수록 한국방송 이사회 해임절차의 불법성과 해임논거의 무리함도 속속 입증됐다. 지난해 7월 동의대가 한국방송 이사직 사퇴를 거부한 신태섭 전 교수를 해임하자마자, 방통위는 신 전 교수의 이사직을 박탈하고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보궐이사로 추천했다. 동시에 이사회 무게추는 여쪽으로 급히 기울었고, 8월8일 이사회는 정 전 사장 해임제청안을 전격 의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월과 6월 동의대의 신 전 교수 해임과 방통위의 강 이사 추천을 무효 판결했다. 신 전 교수는 “두 차례의 법원 판결은 대통령이 정 전 사장 해임안에 서명하기까지 정권이 밟은 일련의 과정이 불법적이고 몰상식적이란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며 “정부·여당은 정 전 사장 해임처분 취소판결을 계기로 법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 조정 수용’을 빌미로 한, 검찰의 정 전 사장 배임혐의 기소도 8월18일 법원의 무죄 선고로 ‘상식에 어긋나는 해임용 죄명’이란 점이 확인됐다. 검찰은 정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한 적자 모면 차원에서 법원 조정(국세청과의 법인세 부과 취소 소송)을 수용했다고 주장했으나, 당시는 2003년도 결산이 288억원 흑자로 확정된 시점이었다. 정 전 사장 해임제청에 반발해 이사회를 퇴장했던 한 이사는 “이사회는 감사원과 국세청을 동원해 법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면서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압적 상황을 연출해 공영방송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며 “현재 새 사장 선임에 당면한 정권은 이번 해임처분 취소판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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