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드러난 ‘언론장악’
감사원, ‘청부 감사’로 정연주 전사장 쫓아내기 근거제공
국세청, 정권지시 받은 서울조사4국서 외주사 세무조사
검찰, 발빠른 출금-체포-기소로 해임에 법적 힘 실어
감사원, ‘청부 감사’로 정연주 전사장 쫓아내기 근거제공
국세청, 정권지시 받은 서울조사4국서 외주사 세무조사
검찰, 발빠른 출금-체포-기소로 해임에 법적 힘 실어
“사필귀정….”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지난 12일 법원의 ‘해임처분 취소’ 판결에 대해 이석형 전 감사원 감사위원(변호사)은 1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방송> 감사에 반대하다 지난 1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한 것으로 알려진 이석형 변호사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전 사장 쫓아내기 과정에서 최전방 저격수 노릇을 했다. 관례를 깨고 온갖 편법을 동원한 감사원의 ‘청부 감사’ 결과가 나오자, <한국방송> 이사회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정 전 사장 해임의 결정적인 근거로 활용했다. 검찰과 국세청은 외곽 지원에 나섰다. 검찰은 정 전 사장을 전격 체포했고, 국세청은 <한국방송>의 외주 제작사 7곳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3대 권력기관이 총동원된 ‘토끼몰이’였다.
우선, 감사원은 전윤철 당시 감사원장의 사퇴로 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지난해 5월21일 <한국방송> 감사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국민행동본부 등이 제출한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이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날 열린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에서 외부위원들은 부담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당시 회의록을 보면, 한 외부 위원은 “뇌물을 받았다면 당연히 감사 대상이 되겠지만, 특정한 사람을 특별승진시켰다는 것만으로 감사대상이 되겠냐”고 지적했다. 수사 중인 사항은 감사청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과 상충한다도 의견도 있었지만 묵살됐다.
20여일 뒤인 6월11일 시작한 특별감사 과정은 혹독했다. 감사원은 정 전 사장을 포함한 임원의 재산 공개내역, 통신비와 법인카드 사용내역, 관용차 운행일지, 전 직원 5300여명의 주민등록번호 제출 등 무리한 요구를 서슴지 않았다. 정 전 사장이 사는 아파트 주변의 슈퍼마켓을 조사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감사원은 초고속 감사를 거쳐 8월5일 △정 전 사장 취임 이후 1172억원의 누적 사업손실 기록 △잉여인력 미감축과 과도한 임금인상 등 방만한 경영 △자격 미달자 국장 특별 승격을 포함한 인사 전횡 등을 발표했다. 당시 감사 지휘는 감사원장 직무대행이었던 남일호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유충흔 당시 제2사무차장(현 제1사무차장)-김용우 사회복지감사국장(현 감사연구원장) 라인이 맡았다.
감사원의 당시 감사결과는 부실이었음이 지난 12일 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법원은 “수신료 수입의 정체와 지상파 방송의 광고수입 감소 및 공적책무 수행으로 인한 지출비용 증가 등 역시 재정상태 악화에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판결했다. 정 전 사장에게 재정 악화의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왜곡했던 감사 결과와 배치된다. 국장 특별 승격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성과 창의력을 요하는 방송사업의 특성상” 비계량적 자료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판결했다.
감사원이 <한국방송>에 대한 감사를 결정한 직후인 지난해 6월5일에는 <한국방송>의 외주제작사 7곳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전격 진행됐다.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은 다큐 전문 프로덕션 리스프로 등 3곳은 세무조사 와중에 부도처리되는 운명을 맞았다.
무엇보다 정권 차원의 하명수사만을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담당한 사실은 당시 세무조사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당시 외주제작사 세무조사를 진행한 지휘계통은 ‘한상률 청장-조홍희 서울청 조사4국장(현 본청 징세법무국장)-이광우 조사4국4과장(현 국무총리실 파견)’ 라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홍희 국장은 당시 세무조사 진행 배경 등을 묻자 “특정기업 조사사항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서울중앙지검(지검장 명동성)의 정 전 사장에 대한 ‘출국정지→전격 체포→불구속 기소’는 해임을 정당화하는 법적 면죄부 구실을 했다. 검찰 안에서도 ‘경영적 판단과 배임은 백지 한 장 차이’라며, 법원의 조정 권고를 수용한 정 전 사장을 처벌하는데 신중을 기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이 처벌을 머뭇거리자 ‘윗선’과 정치권에서 심한 질책이 전달된 끝에, 결국 서울지검 조사부(부장 박은석)가 기소를 강행했다.이용인 최우성 김남일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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