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련 연주곡·김정일 사진 소지에 1심 무죄·2심 유죄
입법부·헌재 판단 불분명 보안법 독소조항 혼란 불러
입법부·헌재 판단 불분명 보안법 독소조항 혼란 불러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목돼온 제7조(찬양·고무 등)의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여전히 자의적이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국가보안법의 남용과 사법 불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조병현)는 지난달 27일 북한 지도부를 찬양하는 노래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어도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동식저장장치(유에스비 메모리)에 ‘대를 이어 충성하렵니다’ 등 김일성 전 주석 부자를 찬양하는 제목의 연주곡을 저장해 가지고 있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송아무개(35) 선전위원장에게 해당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곡은 경쾌한 음으로 구성된 행진곡이거나 클래식풍의 연주곡으로 제목에서 느껴지는 인상과 유리돼 있지 않다”며 “곡은 가사 없이 제목과 음원만으로도 일정한 사상성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작곡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가사가 없어 사상성을 알 수 없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해당 음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쾌한 행진곡 또는 클래식 연주곡으로, 연주만으로 사상성의 전달은 어렵다”고 밝힌 1심 판결과는 정반대의 판단을 한 것이다.
혐의 내용이 비슷한데도 재판부에 따라 제각각 다른 판단이 나오기도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재판장 여상원)는 김 전 주석 부자의 초상화와 인공기를 미국에 있는 집에 걸어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요리사 정아무개(47)씨의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일성 부자는 북한 체제에서 우상화된 절대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초상화에 북한의 혁명노선이나 선전문구가 함께 표현돼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주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석동규)는 사무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걸어놓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아무개(44)씨에게 지난 4월 “국가보안법의 이적행위에 대한 목적은 미필적인 것으로 충분하며, 오로지 학문적인 연구나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는 증명이 없는 한 이적 목적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징역6월의 선고를 유예한 바 있다. 1심 법원은 “서적 등을 소지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침한 인간 내면의 사상과 양심마저 침해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입법부도 헌법재판소도 국가보안법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판부 성향에 따라 180도 다른 판단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판단을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