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 1㎞ 밖 규탄대회
“제발 살려주이소. 농사짓는 거 외에는 아들 대학공부 시킬 방법도 없고 먹고살 방법도 없십니더. 임차료가 올라 다른 데 땅 빌리기도 힘듭니데이.”
경북 고령 낙동강 변에서 28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4대강 사업으로 한 푼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내몰리게 된 무단점유 하천변 경작 농민 권태휘(52·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씨의 호소다.
2일 오후 2시 달성보 건설예정지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낙동강 둔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낙동강 살리기 희망선포식’이 열렸다. 경찰은 이날 행사의 경비를 위해 31개 중대 2500여명의 경력과 수십대의 경찰버스를 동원했다.
같은 시간, 행사장으로부터 1㎞ 떨어진 약산온천 어귀 아스팔트 바닥에서 권씨는 대구·경북·부산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장애인, 골재 채취 노동자, 농민 등 200여명이 함께 연 ‘4대강 사업 규탄대회’에 참석했다. 삼엄한 경찰 포위망 속에 반대 행사에 참가한 권씨는 “나는 정치도, 여야도 모르지만 지천의 오·폐수 정화만 해도 저절로 살아날 강에서 왜 농민들을 다 쫓아내며 군사작전하듯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거냐”고 항의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 대재앙, 생존권 대책 없는 4대강 정비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이 10여개 나붙었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가한 일급지체장애인 노금호(28·대구시 중구 남산동)씨는 “쓸데없이 강바닥에 퍼붓는 예산 때문에 저상버스비 예산과 활동보조비 등 장애인 복지예산이 대폭 줄었다”며 “장애인들은 4대강에 뛰어들어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골재 채취 노동자 김후범(41·대구시 달성군 논공읍)씨도 “강가에서 수십년 동안 먹고살아 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으면서 무슨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는 것이냐”며 “멀쩡한 강을 죽었다고 우기는 것이 더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오후 3시5분께, 대통령을 실은 차량이 희망선포식 행사장을 빠져나간 뒤에야 경찰 포위망은 풀렸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에 대통령은 너무 멀리 있었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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