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를 지키고 과거사를 사죄하기 위해 100일 일정으로 한국을 걷고 있는 일본의 ‘워크 나인(walk 9)’회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한 카페에서 서울 입성을 기념하며 순례의 이유와 느낌 등을 밝히는 발표회를 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일본 ‘워크나인’ 100일 한국순례 막바지
군위안부·원폭 피해자 등과
전국 돌아 17일 임진각에
함께한 사람들 ‘작은 잔치’
“과거사 사죄 위해 걸었다” 대학생 오카무라 나오미(22)는 지난 9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걸었다. 인천 강화도에서 출발해, 강원·경상도를 지나 전라·충청도를 거쳐 지난 10일 서울로 들어왔다. 함께한 이들은 40명 안팎의 일본인과 한국인으로, 하루 평균 20㎞씩 모두 2000㎞ 정도 행군을 했다. 나오미는 왜 낯선 땅을 100일 가까이 걸었을까? 그는 일본 오이타에서 환경 분야를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우연히 생태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64)의 강연을 듣고, ‘평화 순례’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걸으면서 많이 보고 많이 생각했어요. 작은 것들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졸업하면 대도시로 나가려 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한 카페에서 나오미를 비롯해 한반도 남쪽을 걸었던 이들, 그리고 그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등 100여명이 모인 작은 잔치가 열렸다. 나오미 등은 생명평화 순례인 ‘워크 나인’(walk 9)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워크 나인이란,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이 2007년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를 지키기 위해 일본 전역을 순례하면서 만든 모임이다. 평화헌법 제9조는 ‘전쟁 포기, 교전권 부인’을 명시한 조항으로, 일본 내 우파세력이 끈질기게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조항이다.
워크 나인은 올해 순례 대상지를 한국으로 넓혔다. 발기인 마사키 다카시는 지난 9월9일, 100일 일정의 한국 순례를 시작하면서 “평화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과 화해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순례는 사죄의 순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 땅의 구석구석을 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생명운동가들, 대안학교 사람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후손들…. 이날 잔치는 오는 17일 종착지인 파주 임진각을 향하기에 앞서 그동안의 여정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소감을 나누고 각자 가진 재주를 뽐내며 노래와 춤 공연을 펼쳤다. 이 평화 순례에는 그동안 모두 2000여명의 한국인들이 중간중간에 함께했다. 유기농산물 매장 직원인 구시다 간페이(33)는 “길을 걸으며 내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 참가자 김현우(29)씨는 “나의 내면과 자연에 대해 생각한 여행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한 일본인 참가자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렇게 썼다. “경남 함양의 한 대안학교에서 머물던 날,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아리랑을 불렀다. 달이 밝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첫눈이 내렸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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