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사업자가 원인 반박 못하면 인정해야”
희귀질환에 걸려 사망한 사람의 발병 원인이 평소 근무환경과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해의 업무 연관성에 대한 노동자 쪽의 ‘입증 책임’을 적극 완화한 판결로, 비슷한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행정5부(재판장 조용구)는 시멘트공장에서 21년간 근무한 뒤 부비동암으로 숨진 강아무개씨의 부인 우아무개씨가 장의비와 유족 급여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부비동암은 코 안에 생기는 악성종양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씨의 발병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더라도, 분진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환경에서 20여년 근무한 점을 고려할 때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질병 원인 규명에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 사업자나 국가가 강씨 쪽 주장을 반박하지 못하는 이상 업무상 재해로 추정하는 게 사회보험제도의 취지에 맞는다”며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업무상 재해 사건에서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사업주나 국가가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검사할 사회적 책무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우씨는 시멘트공장에서 중간생산물 운반을 주로 한 남편이 퇴직 후 폐암과 부비동암 진단을 받고 숨지자 장의비와 유족 급여를 청구했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작업환경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