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유족에 6천만원 배상하라”
부대 지휘관이 자살을 암시하는 휘하 사병의 메모를 발견하고도 충분한 예방 조처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가 일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박희승)는 군 복무 중 성 정체성 등을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아무개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들에게 62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대 지휘관은 사고 전날 자살을 암시하는 배씨의 메모를 발견했음에도 정신과 군의관에게 상담을 받게 하거나, 성 정체성 장애에 관해 보다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치료를 받도록 조처를 취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며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배씨가 자신의 어려움을 적극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점, 성 정체성에 대해 가족들에게 밝히고 이해를 구하고자 했으나 잘 되지 않자 더욱 좌절감에 빠진 게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보이는 점”을 들어 국가의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지난해 2월 육군에 입대한 배씨는 같은 해 6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서 적응장애와 성 정체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배씨는 같은 해 9월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내용의 메모를 소대장에게 줬고, 이를 보고받은 대대장은 다음날 배씨를 불러 면담했지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배씨는 바로 다음날 새벽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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