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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년 걸린 사법부 판단, 대통령이 훼손”

등록 2009-12-30 19:43수정 2009-12-30 22:18

법조계, 이건희 특별사면에 분노·허탈감
검찰 “유전무죄 항의에 할말 없다” 냉소
“경제 만능 논리가 사법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경제’를 이유로 들며 사법부의 판단을 훼손할 수 있는 것이냐.”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30일, 전날 발표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 결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판사들은 대체로 사면에 반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잘못된 사법적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실체도 불명확한 국익을 명분으로 1인에게만 면죄부를 주는 이런 사면에는 정말 분노한다”고 했다.

법원뿐 아니라 검찰·변호사 업계 등 상당수의 법률가들은 이번 사면에 대체로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한 법원 단독판사는 “국민 입장에선 국제 행사 유치를 통한 이익보다 법적 가치와 사법체제를 잘 지켜 얻는 국격의 향상과 국익이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면을 할 수는 있지만, 사면을 대가로 ‘내년 2월까지 유치활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사법 정의’를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진행됐던 수사와 특검, 재판 과정이 돈의 논리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한 부장판사는 “극단적인 천민자본주의”라는 혹독한 평가를 하며 “법무부에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고 했던데, 사면에 비판적인 여론이 졸지에 ‘구더기’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이 전 회장 봐주기 수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도 일선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이런 일이 한 번씩 있고 나면 수사나 공판을 하기가 정말 힘들어진다”며 “수사나 재판을 받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돈 있는 사람만 봐주는 것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항의를 해오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 경제단체가 바람을 잡고 정부가 이에 화답하는 등 한 사람을 위해 온 나라가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인 적이 있었냐”며 “정의와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돈’을 가진 경제권력이 확실히 우위인 시대라는 걸 절감했다”고 평가했다. 민변의 김갑배 변호사는 “법치주의는 국가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법으로 다스리라는 의미인데, 이번 사면은 국민들에게만 준법을 강요하고 정부 스스로는 최소한의 법치조차 지키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삼성 떡값 검사’로 지목됐다가 특검에서 무혐의 판단을 받았던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직접 발표하게 된 점도 화제에 올랐다. 이 전 회장을 기소했던 조준웅 특별검사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법으로 사면이 규정돼 있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냐”며 말을 아꼈다.


석진환 노현웅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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