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파생상품 시세조정한 자금담장 간부들 첫 기소
220억여원이 걸린 파생금융상품을 두고 국내 기업과 외국 증권사가 수십만주씩의 매수·매도 주문을 내며 치열한 ‘10분 전투’를 벌인 사실이 검찰 조사로 뒤늦게 드러났다. 파생금융상품과 결부된 주식 시세조종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전선은 2003년 4월 한미은행(현 씨티은행) 주식 285만주를 주당 7900원(총 226억여원)에 독일계 은행인 도이체방크에 팔았다. 양쪽은 한미은행 주가가 오르면 1년 뒤 대한전선이 시세차익을 지급받을 수 있는 옵션계약(콜옵션)을 맺으면서, 한편으로는 1년 안에 주가가 한 번이라도 2배(1만5800원)에 이르면 도이체방크는 시세차익을 지급하는 대신 7억원만 보상금으로 주도록 하는 추가계약(녹아웃옵션)을 맺었다. 1년 사이에 주가가 두 배에 이를지에 따라 220억여원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 계약 뒤 한미은행 주가는 뛰기 시작해 10개월여가 지난 2004년 2월19일 1만5800원에 근접했다. 도이체방크로서는 1만5800원에 이르기만 한다면 7억원만 주고 차익은 그대로 챙길 수 있는 기회였다. 도이체방크 계열사인 도이체증권이 먼저 잽을 날렸다. 이날 거래 종료를 10분여 앞둔 2시49분53초, 1만5800원에 10만주를 사겠다고 주문을 냈다. 주가는 1만5800원 문턱까지 올라갔다.
상황이 심상찮음을 깨달은 대한전선은 이날 오후 2시59분37초, 가지고 있던 한미은행 주식 35만주를 1만5300원에 매도 주문했다. 주가는 1만5300원으로 떨어졌다.
6초 뒤 도이체증권이 반격했다. 도이체증권은 다시 93만주를 1만5800원에 사겠다고 나섰고, 결국 이날 종가는 1만5800원으로 마감됐다. 10분여간의 피말리는 전투는 도이체방크의 승리로 끝났고, 대한전선은 최대 220억여원의 기대이익을 날린 셈이다.
시세를 조작하려 한 양쪽의 혈전은 결국 검찰에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진경준)는 7일 시세조종을 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위반)로 대한전선 전 자금팀장 전아무개(46)씨와 도이체증권 홍콩법인 전 상무 손아무개(45)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