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역사책’ <역사 속의 사법부>를 받아본 판사들은 “뼈저린 자기반성이 빠져있다”는 데엔 공감하면서도 과거사 청산의 방법과 시기를 두고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재심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원칙론도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사법부 과거 청산’의 결과물로 보기엔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법원장이 ‘과거 청산’을 강조했던 2005년과 지금의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바뀐 점도 한 원인일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정리할 건 정리하고 넘어갔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거사 반성이 쉽지 않은 법원 조직 내부의 보수화 경향도 지적됐다. 한 판사는 “사법부 안에도 보수부터 진보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근래엔 전반적인 분위기가 개혁이나 반성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흐르고 있다”며 “스스로 과거를 반성한다는 데에 거부감을 느끼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자기비판은 신중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의 뜻과 상관없이 그동안 과거 청산의 기대수위가 높아졌다”며 “사법부가 행정기관들의 과거사 반성처럼 ‘우리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할 수는 없다. 법(재심)으로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과거사 반성의) 눈높이를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며 그동안 자기비판에 인색했던 사법부의 태생적 한계를 에둘러 드러냈다.
내용 평가 이전에, 편찬 과정 자체가 무성의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고위법관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보여주기만해도 역사서로서 충분히 의의가 있는데, 애초부터 그런 기대를 하기 어려웠다”며 “전임 인력이 발로 뛰며 만들었던 <법원사>와 달리 이번엔 판사들 여럿이 돌아가면서 틈틈이 자료를 모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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