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낮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직원들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뜻 거스른 판결’ 내린 판사엔 보복
‘사법개혁’ 외치며 법원 압박 ‘비슷’
검찰, 권력 등에 업고 ‘한배’ 닮은꼴
‘사법개혁’ 외치며 법원 압박 ‘비슷’
검찰, 권력 등에 업고 ‘한배’ 닮은꼴
“5공 때는 (정치권력이) 법원도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 않았나. 그러다 이제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니 적응을 못하고 예전 생각들 하는 거 아니겠나.”
한 고위직 판사는 22일, 정치적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무죄 판단에 발끈한 한나라당 등이 ‘사법부 손보기’에 나선 데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판사들이 주요 시국사건 처리 때 정권의 눈치를 살피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이번 논란을 이끌고 있다는 시각이다. 과거처럼 강압적 방식은 사용되지 않지만, 보수 언론과 단체 등이 협공에 나선 이번 사태는 사법부를 정치권력 앞에 무릎 꿇리려는 동기만큼은 빼닮았다는 얘기다. 과거에도 ‘사법개혁’이 정권의 명분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 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현역 대령을 대법원 감독관과 법원행정처장에 앉혔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자 “혁명정신과 동떨어진 재판을 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은 몰지각한 일부 법관의 배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패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시각서’를 대법원장에게 보냈다. 군인들이 상주하며 재판에 간섭했고, 이들의 요구를 거부한 법원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중정)와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군보안사령부를 통한 사법권 침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의 보수언론이 벌이는 ‘판사 뒷조사’도 이들의 몫이었다. 1980년 10·26사건 재판에서 소수의견을 낸 양병호 대법원 판사는 사표 제출을 거부하다 보안사에 끌려가 조사받은 뒤 법복을 벗었다.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학생 등에게 ‘관대한’ 판결을 한 판사 등은 정보기관의 내사 대상이 되거나 이유 없이 지방 발령을 받아야 했다.
노태우 정부 때까지도 국정원 연락관이 법원 간부 방을 무시로 들락거리며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시국사건 처리 가이드라인을 강요했다. 그러다 민주화 이후 ‘기관원’들이 판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사례는 점차 사라졌다는 게 고참 판사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법원에 대한 정권의 ‘관심’이 높아졌다.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만큼 정권의 뜻을 좇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의 징후들이 감지됐고, 이 대통령은 2008년 대법원의 사법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사법 포퓰리즘”을 경계하자며 촛불집회 사건 등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문제삼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발언 전후로 이뤄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은 결국 정권의 눈치를 살핀 무리수였다는 게 법원 안팎의 시각이다. 당시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 원장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이 <한겨레>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부에 국가정보원 직원이 사건 진행 상황을 문의했다가 반발을 산 것과 관련해서도 ‘정권의 사법부에 대한 인식이 독재시대로 회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헌환 아주대 법대 교수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다시 자신들 아래에 놓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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