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사립학교에 강제 배정받은 학생들의 종교 자유’와 관련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대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판결 획일화·보수화 부를 수도”
검찰·한나라당·보수언론
‘무리한 기소’ 본질 눈감고
형사단독 판사 ‘경력타령’
강기갑·PD수첩 무죄선고
판사 경력 이미 10년 넘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불러온 잇단 무죄 판결의 ‘후폭풍’이 엉뚱하게 “형사단독 판사들의 경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과 검찰, 보수언론이 입을 맞춘 듯 무죄 판결을 ‘젊은 판사들의 튀는 행동’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형사단독 판사의 경력과 이번 무죄 판결은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형사단독 사건이란 ‘최저(단기) 1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처해질 사건을 제외한 형사사건’을 말하는데, 일반적인 폭력이나, 교통사고·집시법·명예훼손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나라당은 법원이 예민한 정치적 사건에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놓자 연일 “운동권 출신 젊은 판사들이 문제”라며 그 배후로 ‘우리법연구회’를 지목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도 지난 23일 “대법원이 경력 10년 이상 된 판사들에게 형사단독 재판을 맡기기로 했다”며 이번 논란 때문에 나온 조처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나 ‘피디(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는 모두 경력이 10년 이상이다. 비교적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많이 다루는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즉결사건(20만원 미만의 벌금·구류에 해당하는 사건) 재판부를 제외한 형사단독 판사 16명 가운데 13명이 10년차 이상이고, 9년차가 2명, 8년차가 1명이다. 더욱이 법원에는 이미 ‘형사단독 재판부에 경력 있는 판사들을 우선 배치한다’는 원칙이 있다. 다만 형사단독 재판부를 전원 10년차 이상으로 채우기엔 인력이 부족해, 일부 지역 지방법원이 5~10년 사이의 판사들에게 형사단독을 맡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판사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법원 내부에서는 ‘경력이 많아야 판결을 잘한다’는 주장은 자칫 판결의 획일화·보수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고위 법관은 “경력과 ‘좋은 판결’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1·2심 판결이 다양한 게 국민들에게 더 이로울 수 있다. 3심제의 존재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또 형사단독 사건이라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거나 쟁점이 복잡하면 이를 합의부에 배당할 수 있는 근거(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 배당에 관한 예규)가 있다. 한편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논란이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 때문이 아니라, 일부 성의 없는 형사단독 판사들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일선 형사사건들 중에는 검찰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형사단독 판사들이 많다는 불만이다. 지방의 한 지청장급 검사는 “힘들게 수사해서 기소했는데,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자료를 검토한 결과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전부인, 이른바 ‘3줄 판결문’을 받으면 정말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형사단독 판사들의 오만과 독선에 대해 대부분의 검사들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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