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여”“진지한 반성”“탄원서” 고전수법부터
형사재판 감형근거 민사서도 적용 ‘돌려막기’도
형사재판 감형근거 민사서도 적용 ‘돌려막기’도
비슷한 사안에 대한 판결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양형기준이 마련돼 시행되고 있지만, 일반 법감정과 동떨어진 법원의 ‘봐주기’ 판결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엔 단골메뉴인 ‘경제 발전 기여’ 등은 물론이고, 형사재판이 언급한 유리한 양형사유를 근거로 민사소송의 배상금을 줄여주는 등 여러 명분이 동원된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정몽구(72)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배임과 횡령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의 배상을 요구한 주주대표소송에서 피해액 1438억원의 절반가량인 700억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배상금을 줄여준 근거로 “현대차를 세계적 업체로 성장시켜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형사재판에서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한 점” 등을 들었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경제 발전 기여’와 같은 감액 사유가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2008년 정 회장의 형사재판을 맡았던 서울고법은 이런 이유에다 “민사소송에서 배상 범위가 확정되는 대로 (정 회장이) 즉시 피해를 회복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민사소송에서 확정되면 갚기로 했다’며 형을 깎아주고, 민사재판에서는 형사재판이 언급한 유리한 양형사유를 끌어다 쓴 셈이다. ‘재판에 성실히 임했다’는 것까지 깎아주기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삼은 사례도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8일 정·관계 불법 로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연차(65·구속기소)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잘못을 뉘우치며 사실관계를 자백했고, 관련자 20여명의 재판에 성실히 임했다”는 이유로 1심보다 1년 적은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전직 임원들의 탄원서 ‘덕’을 본 경우도 있다. 납품업체 선정과 관련해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남중수(55) 전 케이티(KT) 사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각계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처를 호소한 점”을 양형 이유로 꼽았다. 또 남 전 사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국가 통신산업에 기여했으며, 성실히 살아온 점”을 이유로 형량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줄였다. 법원 안팎에서는 유력인사일수록 불리한 양형 요소는 제외되고, 유리한 요소가 부각되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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