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로비사건·효성3세 국외 부동산 등 결론없이 지지부진
검찰이 현 정권과 관련된 사건의 수사를 뚜렷한 이유 없이 오래 끌거나 종결을 미루고 있어 비리 척결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사정 중추기관인 검찰의 이런 행태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밝힌 ‘비리와의 전쟁’이나 ‘권력형 비리 발본색원’ 선언과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양상은 특히 주요 사건이 몰려 있는 서울중앙지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효성그룹 창업주 3세들의 국외 부동산 매입 수사가 대표적이다.
효성그룹 수사는 2006년 시작돼 몇몇 임직원을 기소하며 마무리됐지만, 지난해 국정감사 때 효성 3세들의 미국 고급빌라 구입 사실이 불거져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해 말 조현준 ㈜효성 사장의 일부 혐의(외환거래법 위반)를 밝혀내 기소했지만, 5개월째 “국외 거래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사건의 본체인 자금출처 조사를 매듭짓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에서 통보받은 ‘동아일보 사주 및 오시아이(OCI) 경영진의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 거래 의혹 사건’ 수사도 9개월이 넘도록 진행중이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로비’ 수사는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지난해 2월 의혹이 제기됐을 때 검찰은 “청와대 조사가 끝나면 보겠다”며 늑장을 부렸다. 한 전 청장이 미국으로 출국한 뒤에는 “불러올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놨다. 이 밖에도 지난해 12월 초 청와대 행정관이 기업체 2곳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청와대가 수사의뢰한 사건도 별다른 진척이 없다. ‘한 전 청장이 현 정권 실세에게 연임 로비를 하려고 뇌물을 요구했다’고 폭로한 안원구 국세청 국장 수사가 속전속결로 끝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사 능력보다 의지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 수뇌부는 효성 3세들에 대한 수사를 애초 효성그룹을 수사하던 특수1부가 아닌 외사부에 배당했다. 안원구 국장 사건도 한 전 청장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특수2부를 배제한 채 특수1부에 별도로 배당해 사건을 분리해버렸다. 효성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라는 말을 듣고, 한 전 청장은 현 정부 실세에게 로비를 한 의혹을 사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받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수뇌부가 ‘숨은 비리’나 ‘신종 부패’ 적발을 강조해, 정작 검찰의 신뢰와 명예가 달린 의혹 사건 수사에 힘이 빠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신종 비리 수사를 강조하다 보니 일선에서는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경향이나 부담이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직접 수사 방향을 지시하는 듯한 태도에도 불만이 나온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검사들이 되도록이면 대통령이 직접 찍어 말하는 토착 비리나 교육 비리 등의 분야에 집중하고 싶어 하지, 어렵고 껄끄러운 수사를 하고 싶어 하겠느냐”고 말했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는 “대통령이 집권 3년차에 발생하는 권력형 게이트를 근절하겠다고 했는데, 일선에서는 (그런 발언이)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고 짚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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