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용액 특정’ 법원 권고 무시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 재판부가 이국동(61) 전 대한통운 사장의 횡령액 가운데 개인 사용액을 특정하라고 권고했음에도, 검찰이 이 전 사장이 재임 시절 조성한 비자금 229억원 전부를 횡령액으로 인정한 공소 내용을 유지하겠다고 7일 밝혔다. 곽영욱(70) 전 대한통운 사장의 경우, 빼돌린 회삿돈 83억원 가운데 개인 용도로 쓴 37억8000만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로 기소돼 ‘차별 기소’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배광국) 심리로 열린 이 전 사장에 대한 공판에서, 검찰은 “비자금을 조성할 때 이미 횡령할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개인 용도로 사용한 액수를 특정하기 어려운 이상, 개인 사용액 범위는 공소 사실을 바꿀 사항이 아니라,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개인 용도로 사용한 범위를 특정해 달라”는 재판부의 권고를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검찰은 “‘기술적’으로 특정이 안 되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일일이 확인할 자료가 전무하다”며 “현금이나 달러로 이동해 특정하기 어렵고 사용 내역은 피고인들의 진술을 통해서만 구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 전 사장에 대한 재판은 공소장 변경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반면 이 전 사장이 대한통운 부산지사장 시절, 같은 회사 사장으로 재직했던 곽 전 사장은 부산지사 등에서 회삿돈을 83억여원 상납받았지만, 검찰은 이 가운데 개인 사용액 37억여원만을 횡령액으로 기소했다. 이에 한명숙(66) 전 국무총리의 변호인단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곽 전 사장의 혐의를 덜어줬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며 “같은 회사에서 같은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두 전 사장의 횡령액 기준이 왜 다르냐”고 지적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한통운은 본사와 지사가 각각 독립해 재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직접 비자금을 조달한 이 전 사장은 비자금 조성 당시 횡령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돈을 전달받아 사용한 곽 전 사장과 같이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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