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지침 마련…조서 작성않고 영상녹화만 하기로
대검찰청 형사부(부장 소병철)는 성범죄 피해를 당한 아동 및 장애인에 대한 수사기관의 중복조사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성폭력범죄 사건처리지침’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고 15일 밝혔다. 그동안 피해 어린이들이 수사기관과 법원 등에 불려다니며 악몽 같은 피해 상황을 반복해 진술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정신적 상처를 추가적으로 입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검찰은 이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 아동 등을 상대로 원칙적으로 진술조서를 작성하지 않고 영상녹화 조사만을 실시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기로 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지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피해자가 16살 미만이거나 정신장애 등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검찰은 유죄 입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해 아동 등을 법정 증인으로 세우지 않을 방침이다. 이영주 대검 형사2과장은 “피해자가 원하면 검사나 수사관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조사하도록 하고, 재판부가 진술조서가 없는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항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선 수사기관에서의 초동조사와 영상녹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대구 ㅇ복지시설의 아동을 성추행하고 4억원이 넘는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72)씨에게, 횡령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피해 아동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이 있었지만 “녹화 및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 진술의 뉘앙스 등을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영주 과장은 “경찰 등에서 진술조서 작성 장면을 그대로 찍은 것을 영상녹화 조사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며 “새 지침에는 영상녹화 조사 때의 유의사항 등을 상세히 규정했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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