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건설업체 전 대표인 정아무개씨가 부산지검 등 검찰 간부와 검사들에게 향응과 성접대를 제공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확산된 21일 부산지검 앞에서 한 대학생이 검찰을 비판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대검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 나서
‘리스트’ 57명중 현직검사는 28명뿐, 80~90년대 ‘금품의혹’ 규명 불가능
“조직 신뢰 문제” 중징계 가능성, 직무관련 드러날땐 수사대상에
‘리스트’ 57명중 현직검사는 28명뿐, 80~90년대 ‘금품의혹’ 규명 불가능
“조직 신뢰 문제” 중징계 가능성, 직무관련 드러날땐 수사대상에
25년여 동안 부산·경남지역 검사들을 관리해 왔다는 건설업체 정아무개(52) 사장의 주장이 방송 전파를 탄 지 불과 9시간. 검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민간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기로 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향응·금품·성접대 의혹을 받는 수십명의 현직 검사들이 조사실 문을 드나들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지만, 사실관계나 징계 시효 등을 따져볼 때 요란한 시작만큼 제대로 된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 28명+알파? 정 사장이 작성한 ‘검사 향응 리스트’에 이름이 등장하는 검사는 모두 57명이다. 이 가운데 현직 검사는 28명이다. 나머지는 이미 옷을 벗었다. 일단은 28명이 진상규명위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정 사장이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명단을 공개할 수도 있다. 또 리스트에 없더라도 술자리를 요구하거나 정 사장이 돈을 댄 부회식에 참석한 검사들까지 포함하면 조사 대상자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정 사장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장검사를 따라왔던 평검사들 가운데 나중에 나한테 따로 연락해 접대 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접대가 이뤄진 술집 현장조사나 여종업원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전망이다. 대검 관계자는 “관련자나 술집 등이 대부분 부산지역에 있기 때문에 조사는 주로 부산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 대상자나 범위가 예상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 감찰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국민적 비판 여론이 워낙 크기 때문에 과거 의혹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지만, 정 사장이 검사들에게 돈을 줬다는 1980년대나 90년대 의혹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사실상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이미 검찰을 떠난 사람들도 조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 시효 등을 따져보면 지난해 3월과 4월에 있었다는 두 차례 접대 정도만 사실관계 확인 등 실질적인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사 징계 시효는 최근 3년에서 5년으로 늘었지만 접대가 있었던 시기는 시효가 3년이던 시절이 대부분이다.
■ 징계 수위는? 일반적으로 검찰은 비위 의혹이 드러난 검사에 대한 감찰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전보 등의 인사 조처를 취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파문에 등장하는 부산지역 ㅂ 검사장의 경우 정 사장에 대한 기소가 이미 이뤄졌고, 감찰부서를 담당하는 ㅎ검사장은 진상규명위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인사조처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대검 관계자는 “현직 검사장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보 등의 인사조처를 해야 한다는 외부 의견이 있지만, 아직 시시비비가 가려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조사가 끝나면 검찰총장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문제가 드러난 검사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권고하게 된다. 총장은 이 결과를 가지고 법무부 장관에게 검사 징계를 청구한다. 장관이 위원장인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서는 이 결과를 다시 심사해, 해당 검사에게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을 결정하게 된다.
정 사장은 “사건·수사 청탁 등은 전혀 없었다. 단순히 인간적 관계로 접대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건설업체를 운영했던 그가 수십년간 광범위하게 검사들을 관리해온 만큼, 이런 접대를 단순히 호의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 정 사장은 2002년부터 최근까지 부산·울산 등에서 사기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수사를 받기도 했다. 만약 접대가 사건 무마 등 직무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해당 검사들은 감찰이 아닌 수사를 받게 된다.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접대만 받았을 뿐 직무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검찰 조직의 신뢰가 걸린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검사의 체면과 위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 의견서가 작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해임 등의 중징계가 가능하다. 법무부는 지난 2008년 건설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1억원 가까이 사용한 김아무개 검사에 대해 사상 첫 해임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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