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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임시정부 따라 귀국길에 오른 가족들 / 김자동

등록 2010-04-26 21:16

1946년 1월16일 충칭을 출발한 임시정부 가족들은 임정 국무회의 생활위원장이었던 윤기섭(왼쪽) 선생을 단장으로 상하이까지 3000㎞가 넘는 귀국길에 나섰다. 필자와 모친(정정화)도 김규식 선생의 부인이자 애국부인회 대표인 김순애(오른쪽) 여사와 함께 긴 여정을 겪었다.
1946년 1월16일 충칭을 출발한 임시정부 가족들은 임정 국무회의 생활위원장이었던 윤기섭(왼쪽) 선생을 단장으로 상하이까지 3000㎞가 넘는 귀국길에 나섰다. 필자와 모친(정정화)도 김규식 선생의 부인이자 애국부인회 대표인 김순애(오른쪽) 여사와 함께 긴 여정을 겪었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80




해가 바뀌어 1946년이 되었다. 충칭 시내에 있을 때와는 달리 우리는 중국 신문을 통해서만 국내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1월 초 우리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대한 찬반으로 좌우 대립이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중국은 36년 시안사변 이후 국공합작으로 37년부터 국공 함께 항일전을 치렀다.

그러면서도 크고 작은 규모의 충돌이 그치지 않았다. 일본의 항복 이후에는 충돌이 더 자주 일어났으며, 45년 말에는 여러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련이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엿새 뒤인 45년 8월14일 중국(국민정부)은 소련과 중-소 우호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사실 얄타에서의 미·영·소 3국 수뇌회담에서 소련의 대일전 참가와 더불어 합의된 것이다. 소련은 중국 국민정부를 중국 유일의 합법 중앙정부로 인정했다. 중국은 몽골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옛 러시아가 일본에 빼앗긴 이권을 소련에 넘겨주는 내용을 조약에 담았다. 일본으로부터 만주를 해방시킨 소련은 뤼순·다롄을 제외한 전 지역을 중국 정부에 넘겨주기로 했다. 탈취한 일본군의 무기도 국민정부군에 넘겨주었다.

소련은 이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했으며, 중국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중공에 국민당과의 협조를 압박했다. 미국도 이때 국민정부에 대해 각 방면의 원조를 하면서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적 협력을 종용했다. 공산당에 비해 중앙군은 병력과 무장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였으나 항일전쟁 때의 경과로 보아 미 군사당국이 국민정부의 승리를 의심스럽게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충칭을 떠나기 직전인 46년 1월10일 국공 양쪽은 정전에 합의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합작을 통한 연립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임시정부는 45년 11월 귀국길에 오르며 규운 윤기섭과 남파 박찬익, 두 분에게 잔무를 맡겼다. 임정 가족 등 동포의 관리와 귀국은 규운 선생이 맡았다. 그는 39년 충칭으로 피란할 때도 한커우로부터의 배편으로 충칭으로 가는 가족 일행을 인솔했었다.

46년 1월16일, 마침내 나와 어머니(정정화)를 비롯한 100여명의 임정 가족들은 버스 6대에 나누어 타고 충칭을 출발했다. 그중 1대만 투차오에서 출발했는데, 삼강 신환 선생의 가족과 의산 최동오 선생의 가족 등이 함께 탔다. 투차오 대원 중에서 학병 출신 박재희 등 몇 사람이 함께 출발했다. 충칭 시내에서 출발한 버스 5대에는 김규식 부주석의 부인 김순애 여사와 양우조 선생과 그의 가족, 김상덕 선생의 가족 등도 있었다. 그때 충칭에는 중국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임시정부에 이관된 일본군 위안부 출신 여인이 10여명 있었는데, 이들도 함께 출발했다.

첫날밤은 투차오에 오기 전 근 2년간 있으면서 내가 소학교를 졸업한 치장에서 묵었다. 충칭 시내에서 출발한 일행도 여기서 함께 지냈으며, 17일 아침 일찍 버스는 후난성을 향하여 동쪽으로 다시 출발했다. 쓰촨성 동남부의 바이마~펑수이~친장~룽마를 지나 출발한 지 닷새째 되는 날 후난성에 들어섰다. 다음날 당시 후난성 서북부의 가장 큰 읍인 위안링(원릉)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후난 서쪽의 천수이(진수)와 유수이(유수)가 웬장으로 합류된다. 웬장은 둥팅(동정)호로 흘러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 중에 샹장(상강)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이곳에서부터 우리 일행은 목선으로 옮겨 탔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23일 일행은 타오위안(도원)현에 도착했다. 타오위안은 진(晋)나라 때 전원시인으로 유명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란 글에서 따온 이름이다. 24일 우리는 창더(상덕)에 도착했다. 창더는 둥팅호 서쪽 입구에 있는 도시로 여기서부터는 소형 증기선이 우리가 탄 목선을 끌고 갔다. 창더에서 출발한 것은 25일이었다. 둥팅호 서쪽 입구에서 동북쪽 출구인 웨양(악양)까지 배 위에서 4박을 했다. 난방이 없는 목선의 선창 추위를 꼬박 나흘 낮밤 견딘 것이다. 그래도 낮에는 햇볕이 나면 견딜 만했다. 둥팅호를 건너는 데 나흘이나 걸렸으니 호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충칭을 떠난 지 2주가 지난 30일 오후 웨양에 도착한 일행은 그곳에 정박한 배 위에서 하룻밤을 더 지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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